루마
루마 · 사회언어학자
2024/02/07
지난 주에 글을 내보내고 나서 마음 한 구석이 내내 불편했다.
짐짓 담담하게 글은 써놨지만, 뛰어내리기로 한 나의 선택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다른 피해경험자들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혹시라도 비슷한 처지에 있는 피해자 분께서 나의 글을 읽고 이 길을 가기로 결심하면 어떡하나, 혹은 나의 이야기가 '이 정도는 해야 가해자를 잡는구나' 하는 절망의 메시지로 와닿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들었다.

내가 가해자들에 대한 선전포고로서 이 과정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법기관이 미진함을 인정하고 제도를 개선하길 바라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뛰어내리기'가 결코 모두가 선택하는 길이 되어서는 안된다. 뛰어내리고 난 뒤 감당해야 하는 것들, 그리고 그걸 감당할 수 있었던 나의 위치성에 대해 밝힐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나의 선택이 결코 진공 속에서 ‘나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말이다.

먼저, 지난 번 글에서 결의에 차 시작한 나의 항의절차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돌아보자.

2023년 4월에 이의신청서를 제출하고, 며칠 뒤 빛의 속도로 내려진 검찰의 불기소 처분.
다시 고등검찰청에 항고를 하고, 역시 별다른 부연설명 없이 기각.
8월에는 최종 불복절차로서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제출하고,
세 달 넘게 기다려 11월 말, 기적처럼 인용(공소제기) 결정을 받았다. (셜록 기사 참고)
불송치 통보를 받고 나서 정확히 열 달이 흐른 시점이었다.

혐의가 인정된다는 단 한 번의 'YES'를 듣기까지 꼬박 2년 5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이게 얼마나 긴 세월인지 나는 세 살배기 조카를 보며 실감한다. 처음 텔레그램 메시지를 받았던 그 무더운 여름, 두 손에 폭 담길 만큼 작은 아기였던 나의 조카는 어느새 고고다이노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수다쟁이 어린이가 되었다. 한 아기가 눈을 맞추기 시작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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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성범죄 피해경험자로서, 가해자 처벌과 법/제도/인식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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