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기억의 정치학
2024/01/26
비전향 장기수 문제와 기억의 정치학
북한 사회에서 비전향장기수(非轉向長期囚) 문제가 공식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초반이다. 93년 김영삼 정부는 남북 간의 관계개선과 신뢰회복을 위해 34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비전향장기수 이인모를 북송하기로 결정하는데, 이를 계기로 93년 3월 이전까지 간헐적으로 거론되던 비전향장기수 문제는 주요한 사회적 사안으로까지 부상하게 된다. 이인모의 송환 이후 남·북한 두 국가의 협상에 따라 비전향장기수의 송환은 한 차례 더 이루어지는데, 두 번째 송환은 2000년 6월, 분단 55년 만에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성사된다. 당시 남한 당국은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하여 ‘국군포로 및 납북자’와 비전향장기수의 교환을 제안했으나 국군포로 및 납북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부정하는 북한의 입장에 부딪쳐, 비전향장기수 63명의 북송만이 이루어지게 된다.
비전향장기수 송환 사건이 처음 발생한 1990년대, 북한은 소련 및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도미노식 붕괴에 따라 새롭게 대외관계 및 교역기반을 정립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또한 내부적으로는 김일성 사망, 농업생산성의 급격한 저하, 식량 위기, 이탈주민 발생, 연이은 자연재해 등의 문제에 봉착해 있기도 했다. 특히 국제 관계의 재편에 따른 경제적 교류의 단절과 북한 사회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