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결심 리뷰 그리고 다른 버전 결말 -

김싸부
김싸부 · 한줄로 소개 못함
2022/09/08


1.

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이 글을 쓰기 위해서는 결심이 필요했다. 박찬욱을 좋아하기는 힘들었다. 실제 그의 작품 중, <올드보이>와 <아가씨> 외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도 없었다. 어딘가 과잉된 표현 들이 도무지 어려웠다. 그럼에도 어떤 장면들은 문득문득 반드시 생각나게 만드는 그 기괴한 끌림을 부인할 수는 없었다. 배운변태 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다만, 여러 곳에서 떠도는 그 단어들과 대사의 패턴을 좀 알고 싶었고, 그래서 뛰어들 결심이 필요 했다.

2.

어떤 컨텐츠를 본 후, 글을 쓰기 힘든 두 경우가 있다. 하나는, 도무지 할 말이 없을 때이다. 아무리 짜내고 짜내도 짜내지지 않을 때 그럴때 글은 쓰여지기 영 어렵다. 또 하나는, 너무나 할 말이 많을 때이다. 이걸 어디서 부터 써야 하지, 내 가진 언어의 그릇으로 이걸 담아낼 수나 있을까, 이것도 말하고 싶고 저것도 말하고 싶은데 어떤걸 버리고 어떤걸 잡아야 하지 등, 어찌 보면 전자에 비해서는 무척 행복한 고민이지만,  시작할 엄두가 잘 안 난다. 이 영화는 정확히 후자였다. 그래서 쓰기 위한 결심이 필요했다.   

3.

마침, 제법 먼 길을 갈 일이 생겨서 지하철에서 오고 가면서 영화를 봤다. 오랜만에 영화를 보면서 문득 다시 사는 것 같았다. 물에 잉크가 퍼지듯 오고 가면서 서서히 물들었다. 영화관에서 봤다면 파도처럼 밀려왔을까 하는 아쉬운 의문이 들었다. 미쟝센과 음악, 카메라 워크가 나 이정도 찍는다를 신들려 작두 타듯 보여주고 있었다. 솔직히 거의 매장면에 대해 예술이다 라고 감탄했다.

4.

아, 박찬욱 독한 것, 한국에서는 보고 싶은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감독이 만들었다고 보기를 중단하지 못한다. 영화의 실루엣이 이토록 예쁠 수 있구나. 중국어로 다시 말하자면, 漂亮(piào‧liang). 오고 가는 먼길이 고생이긴 했지만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얼마나 공허했을까. 목적지에 가면서는 영화의 숨소리를 들었고, 돌아오면서는 영화의 숨에 나의 숨을 맞췄다. 바다로 가, 물로 들어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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