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록위마의 시대, 윤석열 정부를 평하다] - 8편 '조금박해'와 '수박', 그리고 '비판의 자유'

출처 :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022814490005648
"비명계 살생부", "수박 색출에 나선 개딸들" 등등의 살풍경한 단어들이 언론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이 현상은 민주당이 더 이상 이재명을 끌어안을 수 없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징표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게 이 글의 입장이다. 우리는 주관적 의지와 객관적 의지 간의 합치 속에서만 비로소 자유로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헤겔의 언명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어떻게 사회 보편의 의지에 가닿을 수 있는가? 그것을 보여주는 지표가 나타났을 때 그것을 잡지 못한다면 자의적인 의지로 격하되어 밀려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이 글을 통해 제시해보고자 한다.

1. 근대정치의 난제 : 누가 더 민주적인가?

 1905년 제1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한 뒤에 레닌이 이끄는 볼셰비키는 당혹스러운 결과와 마주하게 되었다. 차리즘 전제주의 체제 하에서 무장봉기를 지향하는 지하조직으로서의 '전위정당'을 내세우며 치열하게 봉기를 준비하던 볼셰비키들은 제정러시아가 러일전쟁에서 패배할줄도 몰랐거니와 갑작스럽게 의회정치의 공간이 열릴 것이라고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들은 상황의 변화 속에서 레닌이 1896~1905년까지 치밀하게 이론화하였던 전위정당론을 버리고 빠르게 '대중정당'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갑작스럽게 공개조직이 된 상황에서 전문적인 혁명가 집단에 기초한 전위정당은 다양한 출신분자들이 섞인 대중정당으로 변모하였다.

문제는 대중정당으로의 전환과정에서 당의 이념과 정체성에 철저하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당내로 유입되었던 것이다. 볼셰비키의 정치적 정체성이 형해화 되어갔을 뿐만 아니라 당원의 상당수가 비(非)볼셰비키로 채워지면서 러시아 사회민주당 내에서의 볼셰비즘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었다. 레닌은 이러한 당내의 상황과 마주하여 어떻게 당이 노동자 정당이자 혁명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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