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歸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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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being · 마음가는대로 무엇이든, Fiction
2023/09/19
-첫차 오려면 아직 좀 시간이...
사동에서 오래 알고 지낸 교도관이 정문 근무를 하다가 노인을 경비실 안으로 이끌었다.
노인은 마지못해 안에 들어가 앉아 그가 타 준 커피를 마셨다.


규정 위반이지만 40년의 수형생활 중 그가 신입 때부터 15년 이상을 함께 지냈으니 그도 노인도 이렇게 헤어지는 순간에 커피 한 잔을 나누는 것이 그리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출소자 명단에서 봤어요.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잘 지내다 갑니다.
사형을 선고받고 두 번의 감형으로 40년을 복역한 그의 죄목은 두 명에 대한 살인이었으나 그 이유와 과정을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래 전 소장이 다소 강압적으로 물어봤을 때도 그는 끝내 얘기하지 않았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사실을 모두 인정했을 뿐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국선 변호인에게도 그러했으므로 1심에서 받은 형량을 그대로 안고 항소를 포기했다. 아니, 포기했다기보다는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몇 번의 접견 때도 아무 말이 없으니 변호인도 아무런 변론을 할 수 없었다.


추석을 며칠 앞둔 새벽이라 밖은 아직 어두웠다.
법적으로는 자정이 지나는 즉시 석방해야 하나 교통 등의 이유로 그는 5시에 정문에 이르러 30분 후에 온다는 첫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초과된 그 다섯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고 커피를 마시는 십여 분도 그랬다.


노인은 문득, 내가 이 날을 기다리기는 했었나... 기억을 더듬었다.
그랬던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악수가 아닌 차려자세로 정중히 인사하는 교도관이 너무 고마웠던 건 끝까지 '이제 어디로 가실 거냐'고 묻지 않아서였다. 그저 말없이 함께 커피를 마셔주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없는 가로등 길을 조금 헛놓이는 걸음으로 걷다가 노인은 하늘을 보았다. 그리고 걸음을 멈춘 채 쏟아질 듯 가득한 별들을 보며 자신이 40년만에 처음 밤하늘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안에서 밤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없었다.
높고 험한 산들로 둘러싸인 지형이지만 열린 밤하늘에는 별들이 가득했고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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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게시된 이야기는 허구이며 픽션입니다. 혹시 만에 하나 현실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는 절대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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