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사냥을 멈춰라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3/09/22
해방 공간에는 ’좌파‘들이 그야말로 활보하고 다녔다. 구체적인 대안으로서의 지지는 아니라 해도 ’사회주의‘에 대한 선호도 높았고, 좌파연하지 않으면 지식인 대접을 못받을 지경이었다. 이후 ’좌익‘이 ’빨갱이‘로 격하되고 남북 분단이 공고화되면서 그들에 대한 공포와 경계는 극심해졌다. 그런데 좌익을 표방한 사람이건 좌익에 대해 이를 가는 사람이건 이른바 진짜 빨갱이인가’를 가늠할 기준이 필요했다. 그렇다보니 등장한 게 애꿎은 과일,채소들이다. 
1947년 좌파 신문 독립신보는 이런 기사를 낸다. ‘수박같이 거죽은 퍼렇고 속이 빨간 놈도 있고, 수밀도 모양으로 거죽도 희고 속도 흰데 씨만 빨간 놈이 있고.....’ 토마토나 고추는 겉과 속이 모두 빨간 놈들로 통한다. 이 비유는 우익 쪽도 즐겨 쓰게 된다. 1948년 6월 30일 조선일보는 ‘중간파’의 전언을 빌려 이런 기사를 쓰고 있다. 
.
국회의원 1/3은 수박이라는 것이다. 즉 수박은 속이 빨갛다는 것인데 조선이 적색이라는 것은 반드시 공산주의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지라도 외국군대가 주둔하지 않는 통일조선을 수립하기 위해 총진군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을.... 사과는 껍질만 빨간 것으로서 통일조선이 궁극적 결미점이라 생각하는 인사를 지칭.... 토마토는 전적으로 적색이며 만약 그들이 조선을 획득하는 데에 있어서 공당(公黨)에 가담함이 유일책이라고 판정하 시에는 공산당에 가담할 용의가 있는 사람들” 
.
해럴드 경제
독립신보에 따르면 진짜 빨갱이는 복숭아다. 껍질도 과육도 하얗거나 노랗지만 씨는 시뻘건 것이 진짜라는 것이다. 수박은 기회주의자 정도다. 속은 빨간색일지 몰라도 겉으로는 시퍼렇고 칼질해서 속이라도 보기 전까지는 색을 드러내지 않으니 말이다. 재미있는 건 조선일보도 국회의 ‘수박’들을 일종의 중간지대 사람들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주의는 아니더라도 외국군 철수 후의 조선 통일”을 위해 총진군할 사람들로서, 결...
김형민
김형민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273
팔로워 3.4K
팔로잉 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