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끝날 것을 알고 있다고 해도 다시 한 번 더

이찬우
이찬우 · 콘텐츠 기획자이자 퍼포먼스 마케터
2024/08/29
10cm, The 3rd EP 커버, parasol.studio 그림
주말 아침이면 TV 앞에 앉아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이 시작하길 고대했다. 초등학교 4학년. 잘 읽지도 못하는 시계를 계속 쳐다본다. 그러고 있으면, 동생도 졸린 눈을 비비며 곁에 와 앉는다. “간절하게 원한다면 이룰 수 있을 거야. 그 눈 속에 숨어 있는 꿈을 찾아.” 그 애니메이션의 오프닝이었다. 지금 보면 조잡하게까지 느껴지는 3D 애니메이션의 낯선 질감의 배경. 그 곡과 함께 시작한 일요일은 특별하게 어딜 가지 않아도 행복했고 즐거웠다.

신축 아파트였던 우리 집. 집 앞에 있는 것이라고는 초등학교 하나가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고층도 아니었는데 쪼그려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면 하늘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겨울방학이 되고 눈이 오면 등굣길에서 쌀 포대를 타고 썰매를 즐길 수 있는 것도 좋았지만, 그게 꼭 겨울을 좋아하는 이유는 아니었다. 겨울은 내게 로케트였다. 내 방 창가에 앉아서 눈이 떨어지는 걸 보고 있으면 착시처럼 마치 내가 우주로 향하는 로케트를 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거든.

수능이 끝난 겨울의 교실, 짝은 “엄청 재밌는 노래를 찾았다.”며 한 인디밴드의 노래를 들려줬다. “시간은 스물아홉에서 정지할 거야라고 친구들이 그랬어. 오 나도 알고 있지만 내가 열아홉 살 때도 난 스무 살이 되고 싶진 않았어.” 말 그대로 재밌는 가사였다. 자꾸 다가올 스물을 곱씹게 됐다. 나는 과연 1년 후에 무얼 하고 있을까. 어떻게 살고 있을까. 미지의 영역이었다. 이윽고 난 스무 살이 되었고 머지  않아 제일 좋아하는 가수가 누구냐는 물음에 그 밴드의 이름을 대게 되었다.

스무 살에 알게 된, 동갑내기 친구를 꽤 좋아했다. 함께 놀던 친구들이 대개 나보다 한두 살 정도 어리거나, 두세 살 이상 많았다. 흔치 않았다. 첫 만남은 서울 시청 앞 거리, 그 아이의 생일이었다. 우리는 꽤 잘 맞았다. 취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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