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 일본판의 비밀 - 우리가 당황한 한국사
2023/09/17
박창암은 유사역사학 기관지 <자유>의 발행인이다. 일찍이 간도특설대의 일원으로 활약하고 해방 후에 국군에 들어가 빨치산 토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5.16쿠데타에 참여하였던 인물. 장도빈의 영향으로 역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1979년 가을, 자기 집에 이유립을 불러 일본의 변호사 가시마 노보루(鹿島昇)에게 <환단고기>를 건네주게 하였다.
가시마는 자기 책에서 "태백교도가 목숨을 걸고 지켜 낸" <환단고기>를 이유립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적었다. (태백교 교주인 이유립이 자신의 지위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태백교도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시마는 자기 책에서 "태백교도가 목숨을 걸고 지켜 낸" <환단고기>를 이유립으로부터 건네받았다고 적었다. (태백교 교주인 이유립이 자신의 지위를 설명하지 않았다면 태백교도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처음 <환단고기>와 함께 하게 된 것은, 쇼와 54년(1979년) 가을, 서울의 자유사 대표 박창암 씨 저택에서, 태백교의 이유립 씨로부터 <환단고기>, <환단휘기>, <태백속경>, <신시개천경>의 4서를 받았던 것이었다.
가시마는 이 책을 번역해서 이유립과 박창암에 보내 검토도 받았다. 이에 감격한 이유립은 축시를 써서 가시마에게 보내기도 했다. 축시에서 이유립은 자신은 공자, 가시마는 공자의 제자인 자하에 비유하는 등 매우 흡족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 번역본은 일본의 유사역사학에 좋은 자료로 활용되었다. 그때서야 가시마에게 이용당한 것을 안 박창암은 분개했다.
그는 <자유> 1984년 1월호에 그 분노를 이렇게 썼다.
일본의 신국민신문사(환단고기 출간한 곳) 문화침략 현행 원흉이다. 일본 고등학교 국사교과서 왜곡의 진원은 멀리 일제 사적(史賊) 행위 사고(史考)로 소급된다. 그들의 신국민사 사장, 간부, 단골 필진들은 한국을 제 집 드나들 듯이 자주 왕래한다.
그들의 한국인 접촉에는 원칙·정석이 있다. 처음에는 친절히 문물 자료 교환을 하면서 접근한다. 그러나 하나를 내고 그들이 필요한 것 몇 갑절을 우려간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끝내는 일제 사적(史賊) 맥락에서 적게는 대(對)개인 배신, 크게는 침략 행위로 본성을 드러낸다. 그런 생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