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쪘냐는 말들에 대하여

이건해
이건해 · 작가, 일본어번역가. 돈과 일을 구함
2023/05/25


찌기는 쉽고 빼기는 어려운 게 우주의 이치인 것 같다고 하면 너무 심한 비약일까? 세상에는 기아로 고통받는 이가 얼마든지 있어서 살이 쪄서 고민이라는 말을 들으면 세상의 부조리에 이를 가는 경우도 있을 테고, 대사에 문제가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체중이 건강 범위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며, 매일 중노동이나 직업적 고강도 운동에 시달려 아무리 먹어도 체중이 줄어드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 주변에는 대도시에 거주하며 거의 움직이지 않는 노동을 지속하는 사람이 많은 탓에, 아무리 일상을 열심히 영위해도 체중과 체지방량이 늘어나는 것은 인체의 부조리한 이치를 넘어서 타락한 영혼을 단죄하는 신의 징벌이 아닌가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신이 있고 인간에게 자비심을 품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가혹하게 괴롭히지 말고 진노의 불벼락을 내려 한순간에 모든 것을 다 끝내버려야 하는 게 아닐지?

물론, 인간들이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서 알아낸 바로는, 우리가 이렇게 쉽게 살찌고 마는 것은 단순히 병들고 굶어죽기 일쑤였던 과거에 적응한 우리 몸이 틈만 나면 에너지를 저축하도록 진화한 한편으로 문명은 몸이 다시 적응할 틈을 주지 않고 빠르게 발전해서 고칼로리 음식을 마구잡이로 즐길 수 있게 된 탓이라고 한다. 요컨대 우리가 이 시시포스의 형벌 같은 싸움에서 벗어나려면 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생활과 고칼로리 음식에 익숙해질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화란 환경에 어찌저찌 잘 적응해서 자손을 남기면 나보다 발전한 몸을 지닌 자식이 생기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가 유전자 전달에 실패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오늘날 고칼로리 음식에 얼마나 잘 적응했는지가 번식에 아주 결정적인 요소가 되진 않는 듯하니, 인류가 고칼로리 환경에 적합한 체질로 변하는 날은 쉽게 도래하지 않을 것 같다. 결국, 넌더리나도 살과의 싸움을 계속 해나가야만 한다. 아무리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려 하더라도 물결을 거스르지 못하는 배처럼 뒤로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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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미스터리를 주로 쓰고 IT기기와 취미에 대한 수필을 정기적으로 올립니다. 하드보일드 미스터리 소설 “심야마장-레드 다이아몬드 살인사건”으로 데뷔. SF호러 단편소설 ‘자애의 빛’으로 제2회 신체강탈자문학 공모전 우수상. 제10회 브런치북 출판공모전 특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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