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 군사 반란', 통한의 장면들

최경식
최경식 인증된 계정 · 역사와 시사에 진심인 작가 겸 기자.
2023/12/24
[생각의 흐름] 만약의 역사
쿠데타 성공 후 광화문 앞에 진주한 반란군 측 병력.
■정승화 총장 강제연행
사태 초반, 육군참모총장 공관을 지키던 해병대 병력이 뚫리고 정승화 총장이 강제 연행된 것은 매우 결정적이었다. 당시 참모총장 체포조로 투입된 반란군이 소수의 해병대에게 기습 공격을 가했고, 전두환의 최측근들인 허삼수와 우경윤이 공관 안으로 들어가 정승화를 체포했다. 만약 공관 밖을 지키던 해병대 병력이 더 많았거나, 공관 안에 있던 정승화 측근들이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데 성공했다면 처음부터 반란은 실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총리 공관 점령과 최규하의 미온적 대처
당시 반란군은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머무르는 총리 공관을 무력으로 장악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반란군을 매우 유리하게 만들었다. 만약 그때 진압군이 총리 공관을 장악한 후 최규하의 신병을 확보했다면 반란 진압이 보다 수월했을 것이다. 최규하가 진압군의 설득으로 반란 진압을 단호하게 명령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반란군이 먼저 총리 공관을 장악한 후 정승화 연행 결재를 압박하다 보니, 최규하로선 반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웠던 측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최규하가 흔들리지 않고 '군통수권자'로서 전군에 반란 진압 명령을 하달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다.

■33 경비단 전차부대의 회군
영화 '서울의 봄'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당시 장태완의 명령으로 수도경비사령부에 속해있던 33 경비단의 전차부대가 반란군 주요 인물들이 모여있는 장소를 치기 위해 출동했다. 외곽에 있는 부대들이 오는 것과 상관없이, 이 전차부대가 해당 장소를 공격한다면 반란은 그냥 진압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반란군 측의 김진영 33 경비단 단장이 홀몸으로 나서 전차부대의 진격을 막았다. 전차부대를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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