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양균
2023/06/30
alookso 유두호

2019년 8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Westbank)의 고대도시 헤브론(Hebron). 붐비는 시장 뒷골목에는 오물과 쓰레기가 나뒹굴었습니다. 거기엔 포스터 한 장이 붙어있었습니다. 히잡(Hijab) 복장의 팔레스타인 여성이 선글라스를 내리고는 한쪽 눈을 질끈 감고 있는 사진이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꾸 그 사진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윙크를 하는 광고 전단일 뿐인데, 한 눈은 감고 있어도 나머지 눈은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은 어쩐지 세상에 말을 거는 것 같았거든요. 

그때부터 <생존자들 프로젝트>를 구상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서안지구를 방문하게 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팔분쟁)에 관심을 갖게 되어버렸습니다. 팔레스타인이 그렇습니다. 한번 다녀오면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압도적인 현장의 충격이 있거든요. 이후 현지 뉴스를 찾아서 읽곤 했는데 국내 언론보도는 항상 비슷하더라고요.

우리 언론은 이팔분쟁을 국제정세로 말하고, 미국의 시선에서 많이 바라보더군요. 그게 불만이었습니다. 다양한 시각이야말로 사안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현지에서 유혈충돌이 발생했다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저는 이런 게 궁금했습니다.   

저는 의학기자라 이팔분쟁을 보건·복지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코로나19 확산을 기사로 쓰고, 현지 사정을 영상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극빈국의 코로나19 백신 접근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사를 쓰면서도 팔레스타인 사례를 인용하는 등 나름대로 여러 보도를 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는 것이냐는 항의 메일이나 악성댓글은 물론이었고, 같은 내용을 우려먹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거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계속 했던 건 국내에서 보건복지로 이팔분쟁을 조명한 보도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by YANGKYUN KIM
작년에도 팔레스타인에 갔습니다. 그때 현지에서 유혈 충돌이 계속 발생하고 있어서 회사에 보고를 하면 출장을 말릴 게 뻔했습니다. 결국 회사에는 휴가를 간다고 둘러댔는데, 아내는 이해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휴가를 몽땅 출장에 끌어 쓰더니, 자비로 떠나는 출장이라니요.  

설상가상 결혼 후 처음 맞는 아내의 생일과 출국일이 겹쳐 평소 나를 응원해주던 아내는 내심 서운했던 모양이었습니다. 제 딴에는 현지가 위험하지 않다며 안심을 시켰지만,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된 아내는 다신 가지 말라며 조용히 화를 냈습니다.  

어렵사리 서안지구로 떠났지만 현지의 반복되는 위험과 긴장, 현장을 기사로 잘 써야한다는 부담감에 전 완전히 녹다운이 되어버렸습니다. 출장이 중반을 넘어가자 다 버리고 집에 가고 싶었습니다. 현지인들의 호기심 가득한 눈빛과 관심에도 진저리가 쳐졌습니다. 마음고생이 오죽했으면 출장 마지막 날 예루살렘의 시온문(Zion gate)을 방문한 이후 기사의 마지막에 다음처럼 썼을까요. 

“작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과 죽음, 팔레스타인 인도주의 재앙의 씨앗이 된 시오니즘의 오래된 상징물 앞에서 긴 취재는 끝이 났다.”

이제 팔레스타인은 끝. 저는 팔레스타인의 ‘ㅍ’만 봐도 징그럽게 느껴졌습니다.

by YANGKYUN KIM

이제부터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스토리를 전해드릴게요.

서안지구 나블루스(Nablus)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여성을 인터뷰했는데, 그는 현지 난민캠프에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상점은 세 평 남짓한데, 여성은 직접 만든 조악한 기념품을 관광객에게 팔아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도시가 봉쇄되자 손님이 뚝 끊긴 가게는 문을 닫게 되었고, 그녀의 가족은 경제적으로 몹시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도로는 이스라엘군의 검문소에 가로막혔고, 이스라엘의 봉쇄조치가 언제 풀릴지 기약이 없는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코로나19 유행이 잠잠해지면 팔레스타인 여행가이드가 되겠다고 했습니다. 낙천적이라고 해야 할지 ‘대책 없는’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가게에서 기념품 몇 개를 고르고는 거스름돈은 사양했습니다. 

나름대로 ‘정중한’ 호의를 보였다고 여겼지만, 정작 당사자는 정색을 하면서 거스름돈을 모두 쥐어주더니 가게 문을 쾅 닫더라고요. 아이고 성질은! 어쨌든 현지에서 혹시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을까 더 조심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꼬장꼬장한 자존심에, 절대 굽히지 않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처한 환경은, 그러나 대체로 좋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군사 점령 하에서 수십 년째 살고 있고요. 경제적 어려움과 이슬람 사회의 가부장적 분위기는 여성들을 이중, 삼중으로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 쉽사리 나아지리라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제부터 이런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스토리를 여러분께 전해드리려고 합니다.

몇 년 동안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스토리를 기사로 썼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었습니다. 무력감과 함께 그들의 참담한 사정을 팔아 조회 수 장사를 한다는 조롱과 철저한 무관심에 저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글을 그만 쓰기로 작정했었습니다.

그렇게 서랍 한편에 치워뒀던 현지 취재물들을 다시 꺼내든 이유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스토리는 참혹하지만 그 안에 감동과 희망이 있을 수 있다고, 그들과의 연대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 때문이었습니다.

by YANGKYUN KIM

앞으로 얼룩소를 통해 선보일 <생존자들 프로젝트>

정신건강 피해에 대한 증언자이자 이스라엘 점령폭력의 피해자, 가부장적인 이슬람 사회에서 젠더폭력의 생존자로써 여러 층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스토리입니다. <생존자들 프로젝트>는 사회적 약자로 남길 거부하는 여성들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을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라고 말합니다. 

저는 프로젝트가 완료된 이후 팔레스타인 여성들이 저널리스트로써 변화의 주체가 되는 것을 지원코자 프로젝트로 모인 글값을 관련 시민단체에 전액 기부하려고 합니다.  

2023년 하반기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를 거친 우리처럼 아직도 피점령지에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여성들의 이야기로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꼭 읽고 주변에 공유해주세요. 자유를 빼앗기고, 곤궁과 폭력이 어깨를 눌러도 절대로 굽히지 않으려는 팔레스타인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주세요. 

📝 연재일정


[프롤로그] 팔레스타인 여성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간호사·기자도 보호받지 못한다, 이곳은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수감된여성 #점령폭력
이스라엘 군인이 조준 사격해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라잔 알 나자르 간호사와 시린 아부 아클레 기자. 이러한 언론인과 의료인의 피해 사례는 일반 여성의 경우 더욱 가혹한 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수감된 남성을 심리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가해지는 여성 보호자에 대한 폭력과 같은 이스라엘에 의해 가해지는 점령폭력의 비윤리성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증언을 통해 전해드립니다. 

2. 빵 없는 밤, 배고픈 아이는 울고

: #가장이된여성 #이스라엘정착촌 #팔레스타인실업률 
생계를 위해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여성들은 수공예 제품을 만들어 팔거나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일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정착촌에서 일을 할 때 팔레스타인 여성들에 대한 낮은 처우와 차별은 빈번합니다. 특히 암이나 수술 등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상황에서 이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사망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3. 검문소에서 애낳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사연

: #서안지구 #도로통제 #도로위출산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대한 관리는 이동의 자유를 통제함으로써 ‘효과적으로’ 작동됩니다. 이스라엘군은 서안지구 내 주요 교통 요충지마다 크고 작은 검문소를 설치, 유동적으로 도로 통제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로인한 건강권과 의료접근권의 제한입니다. 여성들은 검문소 너머 병원으로 이동하지 못해 검문소 및 도로 차안에서 출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의료기관으로 약이 제때 운송되지 못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4. 팔레스타인 여성들 “남편 학대 신고해도 경찰은 무관심”

: #명예살인 #가정폭력 #코로나19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의 지역일수록 강한 이슬람 보수성이 발견됩니다. 빈번한 가정폭력, 더러 명예살인까지. 문제는 개선의 여지가 적다는 사실입니다. 경찰에 신고해도 권고 수준으로 끝나고, 여성들은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이혼을 선택하지만 극빈층의 경우, 돌아갈 곳이 없어서 가정폭력을 참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죠. 특히 코로나19 당시 봉쇄에 따른 스트레스는 가정폭력으로 이어진 경우가 매우 많았습니다.

[에필로그] 팔레스타인 여성들, 좌절해도 절망하진 않는다



by YANGKYUN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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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균
김양균 인증된 계정
의학기자
여러 의미의 건강에 대해 쓴다. 전자책 <팔레스타인의 생존자들>, <의사 vs 정부, 왜 싸울까?>, <결말을 알고 있는 이야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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