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문화에 대한 단상

이종철
이종철 · 전문 에끄리뱅
2024/03/27
오래전 독일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한 학자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요즘 대학원생들이 번역서만 읽다 보니 언어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사실 학문의 학습 단계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 중의 하나가 언어다. 어떤 언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읽는 텍스트가 달라지고, 이런 차이가 철학의 내용에도 영향을 미친다. 독일어를 잘 하면 독일 철학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고, 프랑스어를 잘 하면 프랑스 철학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다. 마찬가지로 학자들의 대중 언어인 영어를 잘 하면 영미권 철학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현상은 다른 언어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런 언어 능력이 없다면 그만큼 학습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그 간격을 메워 줄 수 있는 것이 번역서이고, 과거 한 세대 이상 그런 역할을 해왔다. 80년 대 이후 번역서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덕분에 이 방면의 학문적 관심이 팽창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사실 원전이나 원서를 읽는 것보다 좋은 번역서를 읽을 때 이해도 쉽고 독서 속도도 빠르다. 오래전 국내에서 많이 알려진 한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들뢰즈의 <양띠 오이디푸스>를 원서로 읽으려면 속도가 나지 않는데 김재인 선생의 번역서로 읽으니까 읽기도 쉽고 이해도 쉽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번역서를 대할 때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 때 언어의 역할이 큰 데 그중에서도 모국어의 역할이 가장 크다. 모국어를 통할 때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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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과 비판》와 《일상이 철학이다》의 저자. J. 이폴리뜨의 《헤겔의 정신현상학》1(공역)2, G. 루카치의 《사회적 존재의 존재론》 전4권을 공역했고, 그밖에 다수의 번역서와 공저 들이 있습니다. 현재는 자유롭게 '에세이철학' 관련 글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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