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촌과 황석우
장미촌의 동인으로는 편집인 황석우(象牙塔)를 중심으로 하여, 朴鍾和(月灘), 朴仁德, 盧子泳(春城), 卞榮魯, 鄭泰信(又影), 李熏, 吳相淳, 辛泰嶽, 李虹 등이 참여하고, 朴英熙(懷月)의 경우는 동인이기 보다는 구체적인 편집 실무를 담당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가운데서도 변영로의 회상에 미루어 짐작컨대, 그 동인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던 것은 황석우였고, 그가 장미촌 발간에 주도적 역할 및 실질적인 역할을 행한 것으로 보인다.
주지하듯이 황석우는 廢墟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창간호 발행(1920.7.20) 이후에, ‘폐허’ 동인을 탈퇴한다. 염상섭은 「저수하에서」(廢墟2호)에서 황석우의 동인 탈퇴 문제를 언급하면서 “同人組織은 그 大體의 思想傾向이 類似한 者가 一種의 文藝運動을 이르킴으로써 出現의 理由가 잇고 氣分의 統一, 意氣의 渾融投合으로써 存續의 可能性을 覔出하는 바”라고 언급한다. 즉 황석우의 ‘폐허’ 동인의 탈퇴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경향’의 이견에서 연원하는 것이었다.
폐허는 아나키즘이라...
주지하듯이 황석우는 廢墟 창간 동인으로 활동하다가 창간호 발행(1920.7.20) 이후에, ‘폐허’ 동인을 탈퇴한다. 염상섭은 「저수하에서」(廢墟2호)에서 황석우의 동인 탈퇴 문제를 언급하면서 “同人組織은 그 大體의 思想傾向이 類似한 者가 一種의 文藝運動을 이르킴으로써 出現의 理由가 잇고 氣分의 統一, 意氣의 渾融投合으로써 存續의 可能性을 覔出하는 바”라고 언급한다. 즉 황석우의 ‘폐허’ 동인의 탈퇴는 단순히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상경향’의 이견에서 연원하는 것이었다.
폐허는 아나키즘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