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에서 황제까지 - 성공한 글래디에이터 석륵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4/04/11
조조가 흉노를 정벌하고 5부로 만들었는데(216년), 이때 남흉노 선우 어부라의 아들 유표가 좌부수가 되었다(이때부터 유씨를 칭했다.) 진무제 때 유표의 아들 유연은 낙양에 있었다. 그는 한문 경전을 공부했는데 매우 영특했고 무예도 뛰어났으며 영준하기까지 했다. 신하들은 그에게 오나라 정벌을 맡기면 순삭할 것이라고 했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아 출전할 수는 없었다(279년).
코에이 삼국지의 어부라
유연은 자기를 자꾸 추천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실제로 그는 재능이 출중하니 죽여야한다는 의견까지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만류하는 사람들 덕에 그렇게 되지는 않았고 혜제가 즉위한 뒤에는 흉노 전체를 관장하는 오부대도독의 자리에 올랐다(291년). 유연의 아들 유총도 낙양에 유학했는데 명사들과 널리 사귀었다. 강궁을 다룰 줄 알았으며 경사에도 해박했다. 

8왕의 난이 일어나 진나라 황족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자, 흉노는 유연을 대선우로 추대하였다(304년). 이때 유연은 성도왕 사마영 밑에 있었는데 사마영을 설득해서 성을 나가 대선우로 등극하고 사마영을 도왔다. 유연은 곧 스스로 한왕에 올랐다. 그가 내놓은 논리가 기가 막힌다.

"우리는 한나라 때 천하로 이어졌다. 나는 한의 형제이니 형이 망하면 동생이 그 뒤를 잇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무렵 사마영은 사마옹-사마월에 의해 실각했다. 사마영의 휘하에 있던 공사번이 군사를 일으켰다. 이때 그를 찾아온 도적무리의 우두머리가 석륵이라는 갈족 사람이었다. 갈족은 오호십육국의 오호 중 하나인 종족인데, 서양 계통이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명나라 때 그려진 석륵의 모습 (위키피디아)

병주자사 사마등은 동해왕 사마월의 동생으로 사마영-유연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는 유연을 상대하기 위해 탁발씨를 동원하기도 했는데 탁발씨는 나중에 북위를 세운다(탁발씨는 척발씨로도 많이 나오는데 탁발씨로 읽는 게 맞다고 한다).

사마등은 군량을 사기 위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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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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