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의 습격을 받는 유럽의 언어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6/29
  • 브누아 뒤퇴르트르 / 작가

  • ▲ <당신은 당신이 아냐>, 1983 - 바르바라 크루거
“영어가 더 폼 나잖아요!”
적합한 프랑스어 단어가 있음에도, 계속 영어 단어를 쓰는 조카에게 이유를 묻자 조카는 이렇게 대답했다. 조카는 만족스러울 때면 양 주먹을 꼭 쥐며 “예스!”라고 외친다. 차 안에서 ‘펀 라디오(Fun Radio)’ 프로그램을 듣다가 조카의 말이 떠올랐다. 진행자는 낭랑한 목소리로 어린 청취자들에게 “라이프(Life)에 대해 말해보라”고 했다. 방송 진행자 역시, ‘라이프’가 ‘라 비(La vie)’보다 폼 난다고 느끼는 모양이다.

노래가 한 곡 끝날 때마다 댄스 플로어(Dance floor)가 이어졌다. 이들은 영단어에 사전적 의미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정작 영어권 국가에 사는 이들은 영어의 그러한 가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라이프’는 ‘인생’을, ‘댄스 플로어’는 ‘춤추는 무대’를 의미하는 단어일 뿐이기 때문이다. 조카는 프랑스의 사상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독창적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조카는 ‘총잡이 아저씨들(Les Tontons flingueurs)’에 나오는 미셀 오디아르의 위트 넘치는 농담을 매우 좋아한다. 그럼에도 프랑스어에 영어를 마구 섞어 쓰고, 인터넷에 종종 등장하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의 이름을 꿰고 있다. 나는 이렇게 분석한다. 조카의 ‘폼 난다’는 말은, ‘있어 보이는’, ‘시대에 걸맞은’, ‘요즘 유행하는’이라는 뜻이다. 영어는 이제 하나의 언어가 아니라 시대변화와 미래의 표상이며, 최신의 개념에 따라붙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라이프’는 ‘라 비’보다 신선하고 모험적으로 들리는 것이다. 

다중언어를 영어로 바꾼 ‘실용주의’


2014년 3월 26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권고사항을 전달할 목적으로 브뤼셀을 방문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의참석 전, 오바마 대통령은 유럽연합의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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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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