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종일 사과해 본 적 있으세요?

기며니
기며니 · 내 글이 돈으로 바뀌어야 먹고 살지.
2023/10/13
그날도 입구는 소란스러웠다. 주로 허름한 옷차림의 50대들이 바닥에 드러누우면서까지 내 자식 앞길을 막을 수 없다면서 울부짖었다. 그들은 장난감을 사달라며 떼를 쓰는 세 살배기 마냥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소리를 치다 갑자기 일어나서는 출입 게이트를 뚫고 사무실로 올라가려고 했다. 경비들은 진땀을 빼며 선생님 이러시면 안 된다고 재차 그들을 막았다. 넘어졌다가도 벌떡 일어나 입구로 달려드는 그들의 옷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경비들은 죄송하다며 연신 사과했다.

익숙한 출근길 풍경이었다. 내 아들은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되지 않겠냐며 담당자를 만나게 해주지 않으면 한강다리로 가겠다는 고함소리를 뒤로한 채 무표정한 직원들과 엘리베이터를 낑겨타고 아홉 시 3분 전. 우리들의 책상 앞에 도착했다.  

가방을 내리기도 전에 이미 전화들은 울리고 있었다. 커다란 테이블 위 전화기 네 대. 쉴 새 없이 울어대는 전화기를 붙잡고 우리들은 하루종일 죄송해야 했다. 최대한 수화기를 늦게 들어 올리고 싶다. "네... 죄송합니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어서..." 옆자리는 이미 업무를 시작했다.

학자금 대출본부 아르바이트는 '주택금융공사'라는 공기업 근무경력을 스펙으로 쓸 수 있는 데다가 당시 만연했던 무급 인턴 문화에 맞지 않게 최저시급의 1.5배를 주고 점심 식대까지 지원했다. 서류전형에 면접까지 보며 꽤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아르바이트 자리에 선발된 인원은 세 명이었다.

사무실에서 흔히 쓰는 하얀색 몸체에 회색 버튼이 달린 유선 전화기는 소리가 울리기 1초 전, 빨간 불빛이 먼저 들어왔다. 빨간 불빛은 응급 상황처럼 꺼짐 없이 울렸고, 부재중 수신 알림은 전화기가 감당할 수 있는 30통을 늘 훌쩍 넘겼다. 우리 업무는 매뉴얼도 필요 없었다. 그저 "1. 네. 알겠습니다, 2. 죄송합니다, 3.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어쩔 수 없습니다." 세 가지 말이면 모든 민원이 해결됐다. 다짜고짜 소리를 지르는 민원인 외 가뭄에 콩 나듯 이성적으로 학자금 대출 수혜자 선정기준 등의 질문을 하는 사람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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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세상을 깊이 읽고 쓰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전업 작가, 프리랜서 기고가로 살려고 합니다. 모든 제안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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