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나키즘 문학의 지형도와 그 성좌들

김승문 · 작가
2024/01/08
숀 쉬안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

한국 아나키즘 문학의 지형도와 그 성좌들

1910년대 중반부터 1920년대 초반에 이르는 아나키즘 문학의 존재는 이 시기의 문학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정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 준다. 더불어 이 시기의 담론을 관통하는 원리 중의 하나가 생명이라는 사실은 동인지 문학에서 프로문학으로의 이행이라는 문제를 다층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동일한 생명론을 전개하더라도, (다소 도식적일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하고 말하자면) 생의 충실과 생의 확장이라는 진폭에서 강조점을 어느 방향으로 두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예컨대 염상섭의 경우 <三光> 동인으로 참가할 때만 하더라도 내적‧외적 해방이라는 ‘이중해방론’을 주장하며, 생의 충실과 생의 확장이라는 두 흐름 모두를 견지해 나가는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폐허> 동인을 거치면서 점차 ‘생의 충실’의 경향으로 기울어지면서 논의를 심화시켜 나간 ‘개성론’의 경우, “단독적 생명이며 그것의 流露”를 개성으로 파악하고, 미의 문제 역시 생명의 문제와 연관시켜 논의한다. 

즉 생의 충실의 문제로 논의가 모아지면 대체로 ‘자아의 각성’이나 ‘개성의 발견’ 등과 같은 근대적 개인의 문제로 수렴된다. 남궁벽 등이 <폐허>에서 보여주었던 자연과 생명에 대한 예찬 등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는 달리, 황석우나 정태신과 같은 아나키스트들은 생의 충실이나 생의 확충이라는 두 방향성을 모두 견지하면서, 동일한 것으로 파악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표피적으로 살펴보면 개인주의적 경향성과 사회주의적 경향성이 동시에 발산되는 느낌은 이로부터 연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장미촌>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만큼 <대중시보> 역시도 그에 상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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