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아들의 교회 탈출기 (11)

이화경
이화경 · 프리랜서 작가
2024/04/15
13. 몰락 

이제 가장 아픈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성진교회가 어떻게 몰락했는가에 관한 이야기를.  
  
장로파와의 전쟁 후, 아버지는 교단 정치 쪽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치엔 아무 관심도 두지 않던 아버지가 총회에 발을 들이게 된 까닭은 전쟁이 났을 적에 총회 목사들과 접촉하면서 서러움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총회에 아는 목사나 임원이 없으니까 도무지 일이 해결이 안 됐다. 아버지는 정치에 간여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나, 뭔가 특별하고 남다른 목사였던 아버지는 그 시점부터 급격하게 기성 목사화 되어 갔다. 총회 임원을 수차례 역임하고 유력 목사들과 호형호제하면서 뽕이 차오를 만큼 차오른 아버지는 교회 건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000년대 중반, 아버지는 교회 주변의 땅들을 매입했다. 교회 건축을 위한 기반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은평 뉴타운이 들어선다는 발표가 나오자 새 성전 건축을 공식화했다. 당시 동네 사람들의 숙원은 그린벨트 해제였다. 북한산 인근지역이라 오랫동안 그린벨트에 묶여서 수 십 년 째 발전이라곤 기대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MB정권이 들어설 게 거의 확실해지자 지역 구성원들은 이제 곧 그린벨트가 해제될 거란 기대감에 부풀었다. 김대중과 노무현을 찍었던 아버지는 대놓고 MB선거운동을 했다. 아예 설교 시간에 MB의 간증 집회 영상을 틀 정도였다. 선거 당일, 아버지는 내게 십만 원을 주며 MB를 꼭 찍으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당시 난 민주 정부의 실정에도 지쳐 있던 상황이어서 잠깐, MB를 찍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투표장에 가서 MB의 면상을 보니 저건 아니다 싶었다. 저런 관상을 가진 인간이 결코 좋은 사람일리 없었다. 결국 돌아섰고 집에다간 MB찍었다고 거짓말을 했다. 십만 원은? 당연히 꿀꺽했지.  
 
건축 설계도면이 나왔다. 반신반의하던 교인들도 설계도면을 보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저 설계도면 대로 건축을 하려면, 현재 교인 수에서 네 배 정도는 불어야 수지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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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직자의 길을 포기하고 작가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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