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학의 개념들 1] 패러다임 (2)

김석관
김석관 인증된 계정 · 기술혁신 연구자
2024/04/26
전편에 이어

(3) 패러다임은 비판에서 면책되는 달달한 기간이 있다.
   
패러다임이 얻어진 후 이루어지는 과학 활동을 정상과학이라고 한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 열어 놓은 문제들을 풀고 더 다양한 상황에 패러다임을 적용해보는 연구를 함으로써 패러다임이 커버하는 현상의 범위를 확장하고 이론도 더 정교하게 다듬는다. 그 결과 초기에는 좀 투박하고 약점을 지녔던 패러다임이 시간이 지날수록 더 탄탄하고 강력한 이론체계로 발전한다. 이 모든 과정에서 과학자들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패러다임이 보여준 방법, 가정, 모형 등을 사용해서 패러다임이 보여주었던 해답과 비슷한 수준의 해답을 도출하려고 노력한다. 
   
쿤은 이러한 활동을 퍼즐 풀이에 비유했다. 퍼즐 풀이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답이 있다는 것이다. 퍼즐을 푸는 사람은 답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퍼즐을 풀고 답이 잘 안 나오면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패러다임 하에서 이루어지는 정상과학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과학자들은 패러다임이 제시한 문제를 풀 때 그 문제가 분명히 답을 가지고 있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답이 잘 안 나오면 패러다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 더 똑똑한 천재가 나오면 이 문제를 풀 것이라고 기대하고 자신의 시도를 포기할 뿐 패러다임이 문제라고 생각하거나 패러다임 자체를 거부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이렇게 현재의 패러다임으로 해결이 안 되지만 그것을 반증 사례로 인정하지 않고 때가 되면 누군가에 의해 해결될 것으로 남겨두는 문제를 변칙사례(anomaly)라고 한다. 정상과학 시기는 패러다임이 비판에서 면책되고 미해결 과제는 변칙사례로 유보되는 시기이다. 
 
이는 칼 포퍼가 과학의 본질이라고 생각한 특징과 부합하지 않는 것이었다. 포퍼는 과학 활동의 본질을 현존하는 이론보다 더 대담한 가설(예: 더 큰 범위의 현상에 적용되는 가설)을 제시하고 관찰과 실험으로 그 가설을 테스트해서 가설이 맞으면 새 이론으로 수용하고 ...
김석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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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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