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변두리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 반 자본의 마음, 모두의 삶을 바꾸다 by 김효경

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04

2년에 한 번, 전세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 때마다 신경 쇠약에 시달렸다. 이번엔 또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나. 운 좋게 전셋값이 떨어지면 한숨 돌릴 수 있었지만, 서울의 투자자들이 돈 냄새를 맡고 부산의 작은 동네까지 눈독 들이면 사정은 달라졌다. 갑자기 치솟은 집값 폭등에 절망할 틈도 없이 새로운 터전을 물색해야 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전세 폭탄으로부터 안전한 지역 몇 군데를 찾는다. 최소한의 방범만 갖춰진 곳이면 나머지 생활 조건은 포기하고 곧장 부동산에 방문한다. 공인중개사가 집을 보여주면 그중에서 가장 깨끗한 집을 고른 후, 서류상의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 이게 과연 선택인지, 자본에 등 떠밀려 유배당하는 건지 모르는 채로. 

시곗바늘이 째깍거리며 내일을 향해 달려갈수록, 우리 모녀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제발, 시간아 더디게 흘러가 다오. 그때마다 나는 감히 내 집 마련 같은 거창한 꿈은 꾸지도 않있다. 그저 한 달에 15만 원 사글세 살이여도 최소 5년 이상 머물 수있는 집을 원했다. 다행히도 현재는 비교적 안정적인 주거 환경을 얻어 숨통이 트였지만, 여전히 ‘집’은 거대한 물음표를 띄운다. 부산에 빈집이 넘쳐나서 몸살을 앓고 있다는데, 이 몸 하나 뉠 곳은 왜 그리도 찾기 어렵단 말인가. 마이너리티 한 인간에게 삶은 어디서나 퍽퍽하다는 씁쓸한 진실이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다. 안타깝게도 이런 씁쓸함은 절대다수가 공유하는 감정이다. 특히 휘황찬란하면서도 잔혹한 도시 '서울'은 부산과 비할 수 없을 만큼 눈물로 얼룩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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