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다니엘’은 흑인 노예가 자신의 레시피로 만든 술이었다
2023/07/12
사내는 7살짜리 꼬마 재스퍼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 증류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을 가르쳐줄 사람이 저기 있다” 그리고 저 멀리 서있는 이에게 이리오라 손짓한다.
어린 견습생 재스퍼 앞에 당도한 그는 흑인이었다. 백인이 아닌 사람 그러니까 흑인은 모두 노예란 사실의 인지가 이 어린아이의 동공을 잠시 자극했다.
그의 이름은 나단 니얼에스트 그린 Nathan nearest green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를 ‘엉클 니얼에스트’라 불렀다. 여기서 엉클은 애칭이었다. 삼촌, 이모님 뭐 이런 식의.
재스퍼는 곧 그를 잘 따랐고 위스키 생산의 모든 과정인 재료손질, 매싱, 발효, 증류까지 전부를 배우게 된다(당시 이 증류소는 스피릿만 생산했다고 전해짐). 니얼에스트 삼촌은 그의 스승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차, 노예 나단과 꼬마 견습생 재스퍼를 고용한 이를 소개 안 했다. 그의 이름은 댄 콜. 루터교 목사였다. 독실한 기독교 성직자가 술이라니? 미국 역사의 주요 인물들인 조지워싱턴, 벤자민 프랭클린, 알렉산더 해밀턴 역시 와이너리 혹은 양조장을 운영했었다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그의 증류소는 미국 테네시주 린치버그의 언덕에 자리 잡고 있었다.
1865년이 되었다. 이날은 미수정헌법 13조가 비준된 노예해방의 날이었다. 이날 부로 엉클 니얼에스트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린’이란 이름을 쓰지 않고 ‘니얼에스트 엉클’을 애칭을 이름으로 불러주길 바랬다. 당시 노예들의 이름은 대개 농장주(주인)의 성 또는 매매 관계자 호칭을 따르는 것이 관례였는데 콜 목사에게 그를 판 노예 회사의 이름이 ‘랜디스 앤 그린’이었다. 맙소사! (나라도) 당연히 그 이름을 영원히 지우고 싶었을 것이다.
이듬해인 1866년 재스퍼는 마침내 자신의 증류소를 차리게 된다. 그리고 엉클 니...
리빙인문학 서적 '가구, 집을 갖추다'를 출간했고 사회, 정치, 경제, 철학, 문화, 예술의 문턱 앞에서 대중문화, 라이프스타일 특히 술(위스키 &우리술)과 관련된 잡식성 글을 종종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