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기억∙추모 공간'인가?

연합뉴스

10월 26일, 10.29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지 일 년이 다 되어서야 참사 현장에 작은 추모 공간이 생겼습니다. '기억과 안전의 길'이라는 이 공간은 유족들과 시민, 이태원 상인들이 1년 가까이 힘을 모았고 유족들의 요청으로 시와 자치구가 비용을 대 조성됐습니다. 하지만 유가족과 시민들은 이 공간은 어디까지나 '임시'이며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합니다.

박이현 / 이태원역 1번 출구 기록보존 활동가 
그동안 많은 시민이 이곳 해밀턴 호텔 옆 골목 참사 현장을 찾아 2만 점이 넘는 조화, 십수만 장에 달하는 추모 포스트잇을 남겨주셨습니다. 그 덕에 이곳은 참사 현장이자, 애도의 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시민들이 이토록 많은 추모 메시지를 남기기까지 이를 보존하기 위해 정부는 거의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국가가 내버려 둔 공간에 시민은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 거리를 청소하고 추모 메시지를 수거하며 또 보존하고 있습니다. 10.29 기억과 안전의 길은 유가족과 생존자, 지역주민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조성한 공간입니다. 참사가 일어난 바로 여기서부터 우리는 나아갈 것입니다. 서로의 아픔을 나누고 위로를 건네며 안전 사회를 위한 기틀을 마련해 가겠습니다.

이지현 / 시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 
참사의 현장 그곳에 남겨진 기억은 지워지지 않겠지만 우리는 이태원이 고통과 슬픔으로만 기억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 길의 조성이 서로를 위로하는 과정이 되고 희생자들을 기억하면서 재난이 반복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이 모이는 공간, 전처럼 즐거운 일상을 영위하는 공간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과정은 어디까지나 중간 과정입니다.


에디터 노트
10.29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참사 초기부터 정부에 추모시설 조성을 요구해 왔습니다.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같은 사회적 재난에서 '기억과 추모의 공간'은 어떤 의미를 갖는 걸까요. '어떤' 논의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걸까요. '기록'과 '치유'의 측면에서 '기억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두 명의 전문가에게 물었습니다.



Q. 사회적 재난에 있어 '기억하고 추모하는 공간'이 왜 필요한가요.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사회적 재난은 현장에 있었던 생존자, 유가족, 목격자, 현장 구조인력처럼 재난으로 인해 트라우마를 겪는 분들이 있고 그 영향은 그분들에게서 그치지 않고 전 국민과 사회에 큰 영향을 줍니다. 사회적 재난 트라우마의 고통은 개인적인 접근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렵고 사회적인 애도와 추모, 또다시 이런 일을 겪지 않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서 의미를 남겨야 합니다. 그래야 회복 과정으로 들어갈 수 있어요.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장
일차적으로는 피해자나 유가족들이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거고요. 두 번째는 우리 사회가 재난이나 참사를 겪은 후 반성과 재발하지 않도록 하자는 약속에 대해 공감하는 물리적 장소가 필요합니다. 그건 추모비나 상징물로는 부족하고요, 기록이라고 하는 물리적 실체로 전승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걸 수집하고 관리하고, 나중에 필요한 사람들이 활용하게 하는 장소로서의 '기억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Q. 구체적으로 어떤 공간이 필요한가요.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좋은 예가 미국 9/11 메모리얼 파크인데요. 테러가 일어난 바로 그 자리에 뮤지엄을 만들었는데, 가보면 고인들의 어릴 적 사진부터 한 명 한 명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찾아볼 수 있게 돼 있어요. 또 가장 처음 보이는 위치에 “시간의 기억으로부터 단 하루도 당신을 지울 수 없다”는 문구가 쓰여 있죠. 우리가 갑작스러운 재난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됐을 때 가장 두려운 게 의미 없이 사라지고 잊혀지는 겁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해주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다는 것, 공동체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노력은 생존자나 유가족이 회복하는 데 큰 힘이 돼요. 그리고 그 노력을 드러내는 장소가 기억과 추모의 공간인 겁니다. 그런 공간을 통해서 생존자와 유가족이 타인과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다시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장
추모 공간이라고 하면, 추모의 역할에만 집중해서 흔히 추모기념관을 얘기합니다. 물론 그 자체로도 충분히 유의미하지만 보다 그 의미를 넓혀서 장기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억기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봅니다. 기억기관은 아카이브(기록관), 박물관, 도서관을 말하는데, 참사의 기억과 기록을 수집하고, 그 기록에 대해 피해자와 시민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면서 참사에 대한 공식 기억을 담아 전승하는 역할을 함께 수행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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