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2/11

 장정일의 시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을 수업할 때였다. 이 시는 김춘수의 <꽃>을 패러디한 것으로서, '라디오'라는 일방향적 매체의 특성을 빌려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랑을 쉽게 끄고 켤 수 있다고 하는 현대인의 이기적이고 가벼운 사랑을 풍자한 것이다. 선생님, 질문. 응. 사랑이라는 게 다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는 것 아닙니까? 대체 '가벼운 사랑'이라는 게 뭡니까?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게 그동안 내 연애의 자랑이었다. 그러다 애인과 같은 직장에서 일을 하며 박 터지게 싸우는 시절을 거치고 나서, 우리 연애의 자랑은 묘하게 뒤틀려 '8년 간이나 연애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바뀌고 말았다. 우리의 연애는 진지하다, 가벼운 너희의 것과 다르다, 특히나 1년에 6번 연애 했다는 유치한 고등학생 너의 것과는 다르지 않을 리 없다. 그러나 사랑의 진지함과 가벼움을 결정하는 기준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그녀가 그토록 거부해왔던 것들이 실은 사랑의 본령이 아닐까 그녀는 생각하게 되었다. 사랑이란 '설렘, 두근거림, 반함' 이 정도가 전부인 것은 아닐까,라고. (...) 그 이후의 모든 절차는 사랑의 사망을 향해 가는, 지난한 애도의 절차 같기만 했다." (김소연, <사랑에는 사랑이 없다>, p.22) 

 '서로에 대한 우리의 열정은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에 최정점을 찍었고 그 이후엔 그 열정이 식어가는 시간일 뿐이었다.' 이 말을 반박하지 못하면...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35
팔로워 318
팔로잉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