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11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밤, 도시는 안개에 쌓이고 비가 처량하게 내리고 있었다. 자정이 넘어야 도착한 집에 대충 짐을 부려 놓은 채로 잠이 들었다. 시차 때문인지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느즈막히 일어나 겨우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일주일 만에 복귀한 집이라 창문을 죄다 열어놓고 식사를 했는데 어찌나 바람이 많이 불던지 바람이 창을 닫아버렸다. 아들은 그런 바람은 처음 보는지라 꽤 놀라 했으나 바닷가 출신인 나야 태풍 철이면 늘 보던 바람이라 그러려니 했다.
늦은 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를 할 즈음 바람의 세기가 거세어지더니 그만 전기가 나갔다. 강풍으로 인한 정전인가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래도 혹 우리 집만 나간 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이웃의 동태를 살피니 모두 불이 나간 상태였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여기저기서 안부를 묻는 문자가 오고 그제야 도시 전체가 정전 사태인 것을 알았다. 물론 그렇다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 사실이다. 이정도 쯤이야 라고 생각했다.
돌다가 멈춘 세탁기며 돌릴 수 없는 청소기, 더는 내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게 없는 상태에다 여행 뒤 끝의 피로까지 더해 나는 종일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계속 부스럭거리다 기타를 치다 혼자 온갖 일을 하던 아이가 배가 고프다며 깨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벌써 한 낮의 해는 넘어가고 그때까지도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이게 웬일?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나? 다급한 마음에 몇 안 되는 이웃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모두 정전이었다. 더군다나 아파트 복도 불도 꺼지고 엘리베이터도 멈추었다. 자가발전이 가능한 아파트에서 그런 일은 좀체 없는 일이다. 나는 비로소 난감한 상황이 인식되었다. 핸드폰 배터리를 점검하니 25% 정도만 남은 상황이었다.
난방에서 취사까지 모두 전기를 사용하는 곳이다 보니 당장 저녁 끼니를 해결해야 했다. 그것보다 아쉬운 것은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로 버텨야 하는 시간이 무한대라는 것이었다. 기약이 없다는 것은 이럴 때를 두...
청소년 분야에 관심이 많아요. 그냥 저냥 생활글을 잘 쓰고 싶은 사람입니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글을 쓰고 싶어요.
@재재나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도 영원할 수 없기에 영원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들이 이데아에 존재할거 같긴 합니다.😉
@진영 저때는 참 암담했어요. 남의 나라에서 애랑 둘이 적막했던 시간들이.…지금은 가끔 그립기도 해요^^
@JACK alooker 결국 영원한 것은 없는거죠?
우와, 36시간 정전이라니 끔찍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생난리가 났을겁니다. 무능한 한전과 지자체에 항의하고 무능한 정부를 욕하고... 근데 그렇게 조용하고 동요가 없다니 그게 더 놀랍습니다.
몇 년전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전봇대가 넘어져 정전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이고 저 혼자였고 방바닥과 침대는 식어가고 핸펀 밧데리는 달랑달랑... 여기는 해발 700미터 산 속. 마지막 SOS 용으로 밧데리를 아끼며 헬기 타고 구조되는 걸 상상하며 떨고 있었는데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복구가 되어 다시 전기가 들어 왔습니다. 그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더군요. 재재나무님은 오죽 했을까요.
참 우리나라 좋은 나라죠?
재재나무님 소중한 추억을 잇글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원할 것 같이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어느 순간 영원한 이별을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듯 합니다.
@재재나무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도 영원할 수 없기에 영원할 수 있는 찰나의 순간들이 이데아에 존재할거 같긴 합니다.😉
@진영 저때는 참 암담했어요. 남의 나라에서 애랑 둘이 적막했던 시간들이.…지금은 가끔 그립기도 해요^^
@JACK alooker 결국 영원한 것은 없는거죠?
우와, 36시간 정전이라니 끔찍합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생난리가 났을겁니다. 무능한 한전과 지자체에 항의하고 무능한 정부를 욕하고... 근데 그렇게 조용하고 동요가 없다니 그게 더 놀랍습니다.
몇 년전엔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전봇대가 넘어져 정전이 된 적이 있었습니다. 새벽이고 저 혼자였고 방바닥과 침대는 식어가고 핸펀 밧데리는 달랑달랑... 여기는 해발 700미터 산 속. 마지막 SOS 용으로 밧데리를 아끼며 헬기 타고 구조되는 걸 상상하며 떨고 있었는데 해가 뜨는 것과 동시에 복구가 되어 다시 전기가 들어 왔습니다. 그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더군요. 재재나무님은 오죽 했을까요.
참 우리나라 좋은 나라죠?
재재나무님 소중한 추억을 잇글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원할 것 같이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갑자기 어느 순간 영원한 이별을 한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숙명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