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은 되지만, 친구는 안 돼"
2021/11/22
열일곱에 처음 만났던 A 감독은 스물둘의 나를 보고 "자기를 배격하지 않을 대학에 교묘하게 잘 스며들어 누가 봐도 '넌 분명히 그런 걸 공부하겠지'라는 걸 공부하고 있는 저 친구"라고 말했다. 말에 담긴 함의를 골똘히 생각하기도 전에, 좋아하는 어른이 내게 보여준 관심이 즐거워 나는 기뻤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대체 난 왜 기뻐한 거야. 감독님의 말을 줄이면 결국 '성장하지 않은 촌스러운 사람'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사회학도'라는 이름에서 느껴지는 장엄함이 좋았다. 단지 그것만을 원했으므로 전공이었던 사회학이 뭔지는 아직까지 알지 못한다. 학부 3학년 때는 학생회장이 되었다. 역시나 그 이름이 주는 장엄함만을 바랐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았다. 그 비루했던 시기를 구태여 말하진 않으련다. 체면치레나 하려고 학기 말에는 감독께 학생회 강연을 청했다. 감사하게도 굳이 응해주셨다.
감독님의 명성 덕에 자리가 금방 찼다. 앞서 언급한 문장으로 우리의 조막만한 인연을 간략히 설명한 후 강연을 시작하셨다. 강연은 '연소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술을 먹고 싶어 안달했다.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 좋은 사람과는 술을 마셔야 한다. 뒤풀이 오실 거죠오? 강요에 가까운 질문으로 감독님을 겨우 술자리에 앉혔다. 감독님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곧 다른 학생들이 자리를 비집고 들어왔다. 알고 보니 감독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온 타학교 학생들이었다. 노골적으로 팬심을 드러내 보이는 학생들을 감독께선 적당한 템포로 응대했다. 그러나 팬심의 수위가 자꾸 높아졌다. 이곳은 팬싸인회가 아니라 술자리였으므로 팬들은 금방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팬과 아이돌 사이의 장벽은 급격하게 무너지고 있었다. 겨울이 오고 있다. 그러다 이런 얘기가 나오는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감독님이랑 친구 해도 돼요?"
순간 "저도요!"라고 할 뻔했다. 감독님은 살짝 웃으며 대...
(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