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고 독후감
2024/03/25
박경리는 일본산고에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민족주의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 당시는 동구권의 붕괴 이후 세계화라는 말이 유행했던 시기였다. 이 노인의 발언은 반드시 ‘민족주의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조금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사실 요즘 일본에 관하여 거론한다는 자체가 일부 참신한 지식인들 귀에는 사양의 만가쯤으로 들리는 모양이고 민족주의자의 촌스러운 몸짓으로 보이는 모양인데 그것은 강자의 논리가 아직 건재해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강자의 논리라는 표현은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민족주의는 결코 90년대에 처음 비판 받았던 것은 아니다. 박경리는 일제 치하에서 20년을 살았는데, 민족주의를 주장했던 사람들이 아시아주의, 세계주의로부터 받은 견제와 비판을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당시 세계주의라는 것은 실제로는 일본제국의 이익에 봉사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세계화의 입장에서 민족주의를 조소하는 것도 어떤 강자의 이익에 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 의심을 품는 것이 민족주의의 정당성을 보증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도.
해리포터는 영국의 이야기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들은 서구 엘리트들(그것이 과학 엘리트이든 군사 엘리트이든 첩보 엘리트이든)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이 가진 거의 종교적인 매력 앞에서, 민족이나 서양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불경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늘 해리포터나 놀란의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팔리는 것은 이미 영국이라는 존재, 서구라는 존재가 전 세계적으로 침투해 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으며, 이것을 단지 그 작품의 내적 가치에 의한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라고 생각해왔다. 가령 동해안별신굿의 서사무가, 중앙아시아의 구비서사시, 중국의 피영희에 대해 아는 사람이 너무나도 적은 것은 그 컨텐츠들의 가치가 해리포터나 놀란의 영화보다 못하거나, 본질적으로 그 영역이 좁기 때문은 아니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영국, 서구는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