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원형과 정난정

김형민
김형민 인증된 계정 · 역사 이야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
2024/01/25
윤원형과 정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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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형은 조선 명종 때 최대의 권신이자 척신(戚臣)이다. 12살에 즉위한 명종의 외삼촌이었다.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면서 그 형제인 윤원형은 권력의 정점에 오르기 시작했다. 실록이나 야사에 묘사된 그의 성정은 여러 면이 있으나 도드라진 특징을 들자면 자신을 반대하는 이에 대한 집요한 적의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거나 비위에 거스르는 자는 반드시 쓰러뜨리거나 눈 앞에서 치워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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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종이 왕위에 오른 해는 1545년 을사년이었다. 선왕 인종의 무덤의 흙이 마르기도 전에 윤원형은 인종의 외척이었던 윤임을 비롯한 이른바 ‘대윤’(大尹)을 싹쓸이한다. 이른바 을사사화다. 당시 예조참의에 불과했던 윤원형은 이 을사사화를 일으킨 공으로 위사공신(衛社功臣) 즉 사직을 보위한 공신 칭호를 얻고 일약 대사헌으로 임명된다. 감찰기관 사헌부의 장 대사헌이었다. 요즘으로 하면 검찰총장격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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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윤원형은 ‘사헌부와 사간원에 친한 인물을 진출시키거나 언관을 강제로 제압하는 형태로 언론을 좌우하였다. 척신의 비리를 감시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해야 하는 홍문관‧사헌부‧사간원의 언론 삼사(言論 三司)는 훈척의 입장을 대변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우리역사넷) 즉 요즘으로 하면 검찰과 언론을 장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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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원형은 진복창 등 수족같은 행동 대원들을 여럿 거느리고 있었고 이들을 대사헌, 대사간 등에 등용하면서 흠 잡아서 사람 때려잡고, ‘이랬다고 하옵니다,“로 사람 목을 달아매는 정치공작을 능란하게 해 냈다. 이를테면 양재역 벽서 사건 같은 사건. 하필이면 윤원형의 똘마니 정언각이 하필이면 딸을 전라도로 시집보내는 날, 그래서 한강을 건너 배웅하던 날, 하필이면 붉은 글씨로 잘 보이게 “여주(女主)가 위에서 정권(政權)을 잡고 간신(奸臣) 이기(李芑) 등이 아래에서 권세를 농간하고 있다.”고 떡하니 쓴 벽보가 양재역에 나붙은 것이다. 정언각이 이 벽서를 갖다 바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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