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의 가설 - 푸, <성의 역사>
2024/06/02
1, 담론의 선동
17세기 부르주아라고 불리는 사회는 어쩌면 우리가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을 억압의 시대가 시작된 때일지 모른다. 그때부터 성을 명명하는 것이 어렵고 값비싸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난 세 세기의 연속된 변모를 보면 상황은 매우 다르다. 성을 중심으로 성에 관해 이루어진 담론의 완전한 폭발이 감지된다. 중요한 것은 권력 자체가 행사되는 장에서 성에 관한 담론이 증가했다는 점이다. 성에 관해 점점 더 많이 말하도록 부추기는 제도적 선동, 성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듣고 성 자체로 하여금 끝없이 누적되는 세세한 것을 통해 분명히 말하도록 만들기 위한 권력의 집요한 권유가 눈에 띈다.
가톨릭에서 반종교개혁으로 인해 철저한 자기 성찰의 규칙을 부과하였다. 욕망, 음탕한 상상, 영혼과 육체의 동시적 동요 전체가 고해와 영성 지도의 대상이어야 한다. “당신의 영혼이 지는 모든 능력, 기억, 지성, 의지를 꾸준히 살피시오. 잠에서 깨어나서는 혹시라도 그 꿈에 홀리지 않았는지 파악하시오.” 성이 직접적으로 언명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순화된 언어의 비호 아래, 성에 모호함도 유예도 남겨놓지 않으리라고 주장하는 담론이 성을 전담하여 추적한 형국이다. 중요한 것은 이 의무가 모든 선량한 기독교도에게 적어도 이상적 상황으로 굳어졌다는 사실이다. 19세기 말에 나의 은밀한 삶을 쓴 익명의 저자는 “은밀한 삶이라고 해서 뭔가 누락되어서는 안된다. 거기에는 부끄러워 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의 본성은 아무리 알아도 지나치지 않다.”고 하며 자신의 쾌락을 위해 글을 쓰며 편집과 교정에 세심하게 성애 장면을 뒤섞었다. 이 사람은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미풍으로부터 용감하게 탈주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조심성과 수줍음을 요구하는 매우 장황스럽기까지 한 명령이 지배하는 시대에 성에 관해 말하라는 수세기에 걸친 명령을 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