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지배와 테크노크라트 - 식민지 협력의 본원적 메커니즘
2024/01/05
기술지배와 테크노크라트 - 식민지 협력의 본원적 메커니즘
1930년대 말의 제국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관계와 상황은 매우 복잡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식민지 조선은 중일전쟁의 시작과 함께 촉발된 제국의 여러 결단들을 받아 안아야 했다. 미키 키요시가 주창한 ‘동아협동체’론으로부터 시작된 일련의 ‘동양론’과 총력전 체제에 접어들며 강력하게 추진된 포섭과 동화의 정책들은 모두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게 어떤 태도를 요구하는 내용들이었다.
물론 이 시기 전향한 카프 지식인들의 대일 협력 내용들은 사후적인 판단의 영역에서 당시의 문학사를 ‘암흑기’, 혹은 ‘공백기’로 서술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 전향 문인들이 보여준 태도와 입장은 그다지 단선적이지 않았다. 특히 많은 소설 작품과 문학론을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표한 김남천의 경우는 이러한 복잡한 상황에 대처하는 식민지적 주체(colonial subject)의 고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문제적이다.
이 글은 총력전 체제 당시 대일 협력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지식인들의 과오를 김남천의 사례를 통해 구제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김남천 역시 제국의 논리에 적극적으로 복무한 전향한 대일 협력 지식인의 전형으로 보는 관점 역시 물론 틀리지 않다. 일제 말의 파시즘 시기 식민지 지식인이 처한 상황적 조건이나 자발성의 유무 등을 통해 협력의 강도를 측정하는 연구 성과는 많이 축적된 편이다. ‘국가’와 ‘국민’을 상정하고 행해졌던 일들을 일거에 봉합하려하거나 넘어서려는 시도 역시 계속적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편협한 민족적 관점 혹은 역사를 어떻게든 분절하거나 연장하려는 차원에서 만들어낸 등식으로 식민지 문학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그 자체가 또 다른 파시즘적 욕망과 맞닿아 있다.
얼룩소 레터에서 추천하는 글이라서 와서 봤습니다.
@콩사탕나무 잘 도착해 다행입니다. 기쁘게 맞아주셔 저도 고맙습니다. ^^
@강부원 작가님 오늘 퇴근 후 집에 너무 반가운 선물이 도착해있어서 기분 좋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얼룩소에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글들을 종이의 질감과 함께하니 더 감동입니다!!
귀한 책 보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꼭꼭 씹어 잘 읽겠습니다!!^_^
주말 잘 보내셔요^^
@홍지현 당시 문인들은 최고 엘리트 지식인이었다고 봐야죠. 지금 작가와는 위상이나 사회적 역할이 좀 달랐죠. 가장 예민한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또 비겁한 사람들이기도 했을테구요. 명민한만큼 움직임이 기민하기도 했을테고, 그러다 보니 저항이나 협력으로 구분돼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당시 문인들의 삶의 모습을 잘 드러낸 작품들은 염상섭이나 박태원의 1930년대 소설들을 좀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캘리뽀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융투자선진화 식민지 시기 지식인들의 협력 행위가 나름의 논리와 판단에 의해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 민족을 위해,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은 다 있었죠. 확실한 청산이 중요했는데, 해방 이후에도 법 제도적 권력을 장악하려는 싸움에 매몰돼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또 다시 친일부역자들이 활개를 치게됩니다. 지금이라도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해야겠죠. 냉정하게 잘잘못을 가리고 분명하게 기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저 시대의 문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닌 과정을 엿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어요. 저 시대의 문인들의 삶을 잘 그린 역사소설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기회가 될 때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요.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더
작가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수 있었을까요?
대다수가 친일로 전향하여 제국의 통치에 협력했다고 보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는 아무리 치장한다고 하더라도 용서될수 없다고 보이구요.
조선의 지식인들이 프랑스혁명처럼 내부적으로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면 조국이 식민지되는 상황을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깊이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더
작가님,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수 있었을까요?
대다수가 친일로 전향하여 제국의 통치에 협력했다고 보입니다.
이런 부끄러운 역사는 아무리 치장한다고 하더라도 용서될수 없다고 보이구요.
조선의 지식인들이 프랑스혁명처럼 내부적으로 사회 변혁을 이끌었다면 조국이 식민지되는 상황을 피할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강부원 작가님 오늘 퇴근 후 집에 너무 반가운 선물이 도착해있어서 기분 좋은 금요일이었습니다! 얼룩소에서 읽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글들을 종이의 질감과 함께하니 더 감동입니다!!
귀한 책 보내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려요!!
꼭꼭 씹어 잘 읽겠습니다!!^_^
주말 잘 보내셔요^^
@홍지현 당시 문인들은 최고 엘리트 지식인이었다고 봐야죠. 지금 작가와는 위상이나 사회적 역할이 좀 달랐죠. 가장 예민한 존재들이기도 하지만, 또 비겁한 사람들이기도 했을테구요. 명민한만큼 움직임이 기민하기도 했을테고, 그러다 보니 저항이나 협력으로 구분돼 역사적 평가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당시 문인들의 삶의 모습을 잘 드러낸 작품들은 염상섭이나 박태원의 1930년대 소설들을 좀 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융투자선진화 식민지 시기 지식인들의 협력 행위가 나름의 논리와 판단에 의해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겉으로 민족을 위해, 미래를 위한다는 명분은 다 있었죠. 확실한 청산이 중요했는데, 해방 이후에도 법 제도적 권력을 장악하려는 싸움에 매몰돼 친일 청산이 제대로 되지 않고 오히려 또 다시 친일부역자들이 활개를 치게됩니다. 지금이라도 역사적 평가를 제대로 해야겠죠. 냉정하게 잘잘못을 가리고 분명하게 기록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문득 저 시대의 문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아닌 과정을 엿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어요. 저 시대의 문인들의 삶을 잘 그린 역사소설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기회가 될 때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