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쳤던 홍세화 선생
2024/04/19
내가 스쳤던 홍세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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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한지 30년이 돼 가는 회사에 대하여 드는 감정은 복잡하지만 고마움도 적지 않다. 어쨌든 한 번도 끊기지 않은 월급을 받았고, 가족 부양할 수 있었고, 기복 없이 나이 들게 해 주었다. 그런데 가장 큰 고마움(?)은 입사 첫 해 실시됐던 신입사원 해외 연수 기회다. 연수라고 하기엔 좀 짧은 열흘 정도의 일정이었으나 조를 짜서 네 명씩 자신들이 일정을 계획하여 해외로 나가는 배낭여행 성격의 연수여서 좋았다. 더하여 역마살은 그득하나 해외운은 지독하게 없어 그 여행이 ‘내가 마지막 본 서유럽’으로 지금껏 남아 있으니 당시 회사의 은총에 새삼 감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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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같은 조였던 동기가 야심차게 준비한 스케쥴이 있었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와의 만남이었다. <파리의 택시운전사>가 출간된 해는 내 입사연도와 같다. 연수는 가을이었으니 그 해의 1/4분기와 2/4분기 내내 <파리의 택시운전사>는 장안의 화제였다. 실수한 후배가 죽일 듯 달려드는 선배한테 ‘똘레랑스’를 부르짖다가 더 혼나기도 했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보다 읽은 사람이 훨신 더 많아 보였다. 불과 30년 전인데 그때 ‘책’의 힘은 지금에 비하면 어마어마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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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베스트셀러의 저자를 직접 만난다고?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녀석은 끝내 섭외에 성공했고 1995년 가을 방송초년생이자 신입사원 연수생 일행은 빠리의 어느 어두컴컴한 까페 안에서 홍세화 선생을 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여러 번 읽고 갔고 궁금한 것도 많았지만 질문도 제대로 못하고 차분한 어투의 그분 말씀만 경청하며 귀한 시간을 보냈다. 그때 내가 겨우 던진 질문 중 하나는 페르 라셰즈 묘지에 대해서였다. 책에서 봤던 페르 라셰즈 묘지와 마지막 저항 후 총살당한 147명의 코뮌 지지자들을 위한 기념탑에 대해서 더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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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의 대답은 대충 이랬다. “그들은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코뮌군이나 정부군이나 무참한 살육...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