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여러 키워드가 교차된 책이다. 여성과 남성, 삶과 죽음, 개인과 국가, 사랑과 증오, 선과 악. 전쟁에는 서로 반대라고 알고 있는 모든 개념이 서로 겹쳐 있었다. 여성과 남성을 구분하되 구분하지 않았고, 죽이기 위해 애쓰는 일과 살리기 위해 애쓰는 일이 공존했다. 전쟁에 참여하는 일이 개인의 목적인지 국가의 목적인지 불분명했고, 적국의 병사를 마주하며 선악의 구분을 잃어버리는 사람도 있었다. 이 농도 짙은 삶의 공간에서 이분법은 통하지 않았다. 복잡하기만 한 세상이 압축될 뿐이었다. 책이 담고 있는 짧고 긴 이야기를 읽어내리며 수없이 울었다. 그 울음은 감동과 안타까움을 계속해서 넘나들었다. 인간은 아름다웠고, 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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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이지 않는 곳을 비춘다. 기록되지 않은 목소리를 담았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에서 한 친구가 ‘기록하는 주체’의 권력을 언급했다. 그는 아우슈비츠를 예로 들었는데, 아우슈비츠가 독일어라는 사실을 짚어주었다. 유대인 학살을 상징하는 ‘아우슈비츠’라는 장소는 독일의 입장에서 기억하고 기록한 역사였다. 폴란드는 ‘오시비엥침'이라는 이름을 기억해달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여성을 주체로 전쟁을 기록한 이 책은 얼마나 유의미한가. 남성 영웅에 의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 의해 묻히고 지워졌을 여성 군인이 이 책을 통해 가시화되었다.
전쟁을 몸소 치러낸 이 여성들은 이중적이었다. 이들은 전쟁이 남성의 공간이라는 공식에 휘둘리지 않으났고, 남자 군인의 무시와 비웃음에도 기죽지 않았다. 여성의 사회적 한계에 코웃음치고 거뜬히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전통적인 여성성을 그리워했다. 자수를 놓고 싶어했고, 전쟁 중에서도 풀꽃의 아름다움을 목격할 줄 알았다며 이를 자신의 여성성과 연결시킨다. 무기를 인형처럼 들며, 살상의 자세와 양육의 자세를 섞어버렸다. 전통적 여성성을 열심히 배반하고 살았던 이들은 오히려 누리지 못한 여성성을 그리워하고 상상하며 전쟁의 시간을 버텼다. 이들의 복잡한 여성성을 보수적이라 해야 할지, 진보적이라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