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 천도와 대통령 관저 이전 그 사이의 평행이론
2023/08/02
새 왕조는 열었지만 아직 ‘고려’의 ‘권지국사’로(명나라의 책봉을 기다리며) 개경에 들어앉아 있던 이성계의 마음은 꽤 급했던 것 같다. 용상에 앉은 지 달포도 안 돼 천도 얘기를 꺼내든 것이다. 청와대에 무슨 귀신이라도 나오나 싶을 만큼 허겁지겁 여기저기를 들쑤시던 630년 뒤의 대통령만큼이나 이성계는 성급했다. 이때 언급된 장소는 고려 왕조 시절 남경이었던 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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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북악산, 동으로 지금의 동대문 근처 낙산, 남으로 용산 지역까지를 망라했던 이 한양 땅은 문종, 숙종, 충선왕 등 고려 왕들도 각별한 관심을 보였던 곳이기도 했다. 천도 문제는 신하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치지만 이성계는 멧돼지처럼 밀어붙인다. “도읍을 옮기는 일을 명문세가들이 모두 싫어하는 바를 내 어이 모르겠느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를 중지시키려는 심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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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천도가 난관에 부딪치자 태조는 또 다른 안을 내민다. 풍수도참에 능하다는 평을 들은 문신 권중화가 계룡산 지역의 신도읍 지도를 만들어 바쳤고, 이성계는 이에 마치 사랑에 눈먼 남자처럼 다급하게 대쉬한다. 어디든, 어쨌든 옮겨야 하는 것이다. 갖은 핑계를 대며 계룡산 남하를 만류하던 신하들을 무시하고 계룡산을 순시한 이성계는 대번에 수도를 그리로 정하고 필요한 공사 건설을 지시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겠다는 뜻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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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새 술을 담을 새 부대가 너무나 부실했다, 지역의 입지나 교통의 문제, 조세 징수의 편리함 등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신하들의 의견 공유도 없이 일단 땅부터 파고 봤던 일종의 14세기판 불도저 정책이었다. 청와대에 무슨 옴 붙은 것처럼 국방부 외교부 등등 주요 부처들쑤시고 생돈 들여가면서 기어코 청와대를 원치도 않는 ‘국민에게 돌려 주고’ 용산에 새 둥지를 튼 630년 뒤의 대통령만큼이나 무리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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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백성들도 죽을 맛이었다. 계...
사학과는 나왔지만 역사 공부 깊이는 안한 하지만 역사 이야기 좋아하고 어줍잖은 글 쓰기 좋아하는 50대 직장인입니다.
@김형민 웬만한 무당보다 점을 잘 본다는 영부인을 둔 나라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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