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정부 때 “국민들이 가장 저축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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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25
#2023년 11월부터 평범한미디어에 연재되고 있는 [이내훈의 아웃사이더] 31번째 기사입니다. 이내훈씨는 프리랜서 만화가이자 정치인입니다. 주로 비양당 제3지대 정당에서 정치 경험을 쌓았고 현재는 민생당 소속으로 최고위원과 수석대변인을 맡고 있습니다. 이내훈의 아웃사이더는 텍스트 칼럼 또는 전화 인터뷰 기사로 진행됩니다.
 
[평범한미디어 이내훈 칼럼니스트] 정치인 노태우를 떠올려보면 가장 먼저 전두환의 그늘이 드리워진다. 둘 다 신군부의 주역으로 군사 쿠데타를 지휘했다. 그런데 실제 정권 운영에서는 크게 달랐다.
 
국민들이 민주화의 열망으로 피 흘려가며 쟁취했던 대통령 직선제였던 만큼 이전처럼 공포 정치를 반복할 수 없었다. 노태우 정부는 권위주의의 탈을 벗으려고 했다. 경제 정책에도 힘을 썼다. 해외 자본을 유입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종전까지 최악의 노동권 방치 수준에서 조금씩 제도화로 나아가기 위한 첫 발을 뗐다. 어느정도 경제적 선순환이 일어났다. 은행 예금율이 가장 높았던 때가 바로 노태우 정부 집권기였다.
 
▲ 노태우 대통령은 떠밀려서 개혁의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KBS 캡처>

명분과 결과는 다를 수 있으며 이는 역사에서 증명되곤 한다. 노태우 정부가 표면적으로나마 권위주의를 탈피하려 한 이유를 짚어보고자 한다. 영화 <1987>에서 생생하게 목도한 현대사를 다시 나열해보려고 한다.
 
1985년 실시된 12대 총선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이 이끄는 신한민주당이 제1야당으로 급부상했다. 신한민주당은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하는 1000만 개헌 서명 운동을 벌이며 전두환 정부를 압박했다. 서슬퍼런 전두환 정부가 강력한 민주화 요구를 겨우 막고 있던 그 즈음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3세 대학생 박종철이 물고문을 당하다 사망했다. 이 사실을 동아일보가 일보로 타전하고 세상에 알려지자 전두환 정부의 공포정치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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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미디어는 언론사입니다. 국회를 출입했던 정치부 기자 출신 30대 청년이 2021년 3월 광주로 내려와서 창간했습니다. 지속적으로 좋은 기사를 쓰고 싶어서 겁 없이 언론사를 만들었는데요. 컨텐츠 방향성, 취재 인력, 초기 자금, 수익구조, 사무실 등 무엇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좋은 공동체를 위해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언론인의 자세, 이것 하나로 여기까지 왔습니다. 끝까지 버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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