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을 위한 혹은 사랑을 위한 선언 - 알랭 바디우 <철학을 위한 선언>
잊었다, 왜, 무엇 때문에 알랭 바디우를 읽고 싶어졌는지. 미루어 짐작컨대 어떤 책을 읽다가 인용 부분이 좋았거나 그의 철학 사상을 설명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거나.
철학은 때때로 삶의 도피처가 되거나 가장 실용적이지 못한 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여전히 높은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각하는 인간 – 그것이 인류의 문명과 역사를 웅변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아닐까. 철학은 그 생각의 갈피를 잡아주고 삶의 목적과 방향을 고민하게 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철학을 밥과 물만큼이나 꼭 필요한 무언가로 여겨야 하는 것은 아닌가.
만약 우리가 철학자들을 우리 시대를 위한 독창적이고 확인 가능한 연료를 제시하는 사람들로 이해한다면, 또한 주석가들과 필수 불가결한 원로들, 공허한 에세이스트들을 무시한다면, 철학자는 열 명 정도밖에 남지 않는다. - 『철학을 위한 선언』, ‘가능성, 41쪽
『철학을 위한 선언』과 『사랑 예찬』을 연달아 읽으면서도 1989년과 2009년의 ‘사이’만큼이나 철학과 나 사이의 ‘거리’는 좁혀지지 않은 것 같다. 20년의 시차를 둔 책들이지만 문제적 철학자의 생각은 낯설지 않았다. 두 책의 내용과 성격이 달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철학의 방법과 태도가 『철학을 위한 선언』이전만큼 달라지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은 삶의 태도와 방법에 급격한 변화가 없었다는 뜻이고 사회적 상황 등 외적인 조건들이 주는 충격도 없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철학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와 관련된] 정세를, 다시 말해 진리들의 사유 가능한 결합(conjonction)을 발언하는 것이다. 철학은 시대의 균열에 대해 사유하고, 자신을 조건 짓는 것을 반성적으로 비틀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