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1
2014년 4월, 한참 석사학위논문을 위해 일베 연구에 매진하던 시기였다. 416 당일 아침, 당시의 연인이자 지금의 아내와 지하철을 탔다. 습관처럼 핸드폰을 보는데, 서해상에서 여객선이 전복됐고, 전원구조됐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때 우리는 확실히 놀랐지만, 전원구조라는 말에 크게 안도했다. 안도하며 나는, 일종의 국뽕인듯이,그래, 우리나라가 이정도는 되지, 하며 연구실로 갔던 것 같다. 이미 아침이라기엔 늦은, 점심을 먹자니 이른 시간이었다. 천천히 연구실에 짐을 풀고 연구실 동료들과 식사를 하러 내려갔는데, 학생식당에 걸린 TV가 심상치않았다. 밥을 받았을리도 없거니와, 받았다 한들 넘길수 없었을 것이다. 그 길로 나는 집으로 돌아가 선수만이 간신히 나와있는 모습을 끝없이 송출하는 뉴스채널만을 하염없이 돌려봤다.
이것이, 나에게 와서 박힌 2014년 4월 16일이다.
시간이 점점 흘렀다. 졸업기한은 다가오고 있었고, 내가 연구하던 대상이 하필은 일베였기에, 무언가 한 마디를 하지 않을수가 없었는데 걸린듯 막힌듯 말이 나오지 않아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이라 할 때, 이 최악의 고통을 조롱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과 해명(변명이 아니라)을 하지 않는다면 연구 자체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끝에 나는 겨우 다음과 같이 써내려갔다.
이것이, 나에게 와서 박힌 2014년 4월 16일이다.
시간이 점점 흘렀다. 졸업기한은 다가오고 있었고, 내가 연구하던 대상이 하필은 일베였기에, 무언가 한 마디를 하지 않을수가 없었는데 걸린듯 막힌듯 말이 나오지 않아 어쩔줄을 모르고 있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은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이라 할 때, 이 최악의 고통을 조롱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과 해명(변명이 아니라)을 하지 않는다면 연구 자체가 무의미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끝에 나는 겨우 다음과 같이 써내려갔다.
일베에서는 희생자 부모들에 대한 비아냥과 비판이 많았다. 많은 이들이 유족들에게 ‘이성’을 요구하고 정부를 향해 원망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선동꾼’이 아니냐며 비판하며 유족들을 ‘유족충’이라 부르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다. 유족들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 것과는 대비되게도, 일베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도 유족들에 대한 공감보다는 현장에서 실종자들을 구조하기 위해 잠수를 하는 요원들과 대통령 등 정부측 인사들에게 더 많은 공감과 지지를 표명했다.
(중략)일베 이용자들의 ‘전도된 공감’은 스스로의 위치를 패배자로 상정할 수 없는 상상력의...
참사의 사회화와 추모를 강요하지 말라 사이에 '우리'가 존재하는듯 보이네요. 세월호에 굉장히 분노했었고 아무 해결? 없이 잊혀질때쯤 또 이태원이 발생하는 광경을 목도하는 윤석열 정부하에서, 일부에선 지속적인 추모가 세월호이후 천만촛불혁명으로 탄핵을 도출해낸 경험의 궤를 따르고 있고 한켠에선 왜 모두 추모해야하느냐?며 저들을 비난하기도 하고 정반대의 모르쇠?로 일관하는 모습도 지인에게서 보고 있습니다. 사회가 소멸해가는 '나'만 아는 시대, 나하나만 돌보기도 버거운 시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복원하는데 성공한다면ㆍㆍㆍ이태원 때 4시간의 사투에도 끝내는 놓쳐버린 구조의 골든타임 4분을 복원할 수 있을까요?
정보화 시대에는 광고, 홍보 그리고 선동질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고 우리는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공부하러 가는 사람이 절로 가고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이 뜨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괴벨스를 열심히 가르치면 좀 나아지려나?
정보화 시대에는 광고, 홍보 그리고 선동질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하고 우리는 늘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래서 공부하러 가는 사람이 절로 가고 나는 자연인이다 라는 프로그램이 뜨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교육에서 괴벨스를 열심히 가르치면 좀 나아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