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스부르크 가문의 결혼 정책

엘아라
엘아라 인증된 계정 · 한때과학자이고팠지만 지금은역사이야기중
2022/12/12
   
“다른 이들은 전쟁하게 두라, 그대, 행복한 오스트리아여 결혼하라!Bella gerant alii, tu, felix Austria, nube!”
   
이 말은 합스부르크 가문에서 내려져 오는 말 중의 하나로 합스부르크 가문이 결혼으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이익을 얻었는가를 알 수 있는 말입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15세기 이후 신성로마제국의 황위를 독점적으로 이어나갔던 가문으로 “황제의 가문”이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오래도록 제국의 황위를 이어나갔을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지역을 통치했던 가문이었기에 유럽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가문이기도 합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성장하게 되는데는 결혼이 매우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10세기 현재 스위스 지방에서 시작된 이 가문은 조금씩 성장해나가게 되는데 특히 13세기 대공위시대가 끝나게 되는 시점에서 “로마인의 왕”이 된 루돌프 1세가 오스트리아 공작령을 장악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지로 만들면서 합스부르크 가문이 황제의 가문이 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사실 루돌프 1세가 로마인의 왕이 되었을 때 합스부르크 가문은 벨프 가문이나 비텔스바흐 가문같은 가문들에 비하면 세력이 약한 가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루돌프는 이런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서 자녀들을 강력한 세력을 가진 제후 가문과 통혼시켰으며 이것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로마인의 왕 루돌프 1세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4세)의 씰


사실 이런 정략결혼은 사실 당대나 이후의 유럽 왕가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중세시대부터 유럽의 통치가문들은 자신들의 통치영지를 넓히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현재도 그렇지만 통치 영지가 넓을수록 세력이 커질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통치 영지를 넓히기 위해서 이웃 제후들과 전쟁을 하기도 했고 또 상속문제를 걸고 넘어져서 영지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자주 가문들끼리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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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왕가 특히 공주님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살아있는 왕족은 관심 없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과학 이야기도 할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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