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아라
한때과학자이고팠지만 지금은역사이야기중
유럽 왕가 특히 공주님들에 대해서 관심이 많고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살아있는 왕족은 관심 없습니다.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과학 이야기도 할까합니다.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2)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세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2)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세번째)
1913년 콘스탄티노스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그리스의 국왕이 되면서 조피 역시 그리스의 소피아 왕비가 됩니다. 둘의 즉위는 이전에 언급되었던 “콘스탄티노스와 소피아가 통치할 때” 그리스가 전성기에 이를것이라는 전설이 다시 한번 회자되면서 둘은 처음에는 매우 환영받게 됩니다. 하지만 그리스 왕실은 바로 어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을 때 소피아의 남편인 콘스탄티노스는 그리스가 중립을 지켜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 내부와 국제 관계에 큰 문제가 됩니다. 베니젤로스를 중심으로하는 인물들은 그리스가 연합국에 참여해서 승전국으로 이익을 얻어야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게다가 프랑스나 영국 러시아의 영향력이 컸던 그리스가 연합국으로 가입하지 않는 것은 도리어 이상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콘스탄티노스가 중립은 선택한 이유가 처남인 빌헬름 2세에게 호의적이며 그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기에 중립으로 남으려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쩌...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1)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두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1)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두번째)
조피와 콘스탄티노스의 결혼은 그리스 사람들이 매우 열광하는 행사중 하나가 됩니다. 특히 그리스에 전해져오는 이야기중 하나가 콘스탄티노스와 소피아가 함께 왕위에 오르면 아야 소피아가 그리스로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조피와 콘스탄티노스의 결혼은 이 전설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기에 더욱더 그리스 사람들에 호의를 얻게 되었을 것입니다. 둘의 결혼식은 아테네에서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신랑의 할아버지인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와 신부의 오빠인 독일의 빌헬름 2세, 신랑의 고모부이자 신부의 외삼촌이었던 웨일스 공(후에 영국의 에드워드 7세), 신랑의 사촌인 러시아의 황태자 니콜라이 알렉산드로비치 대공(후에 니콜라이 2세)등 유럽의 중요한 왕족들 대부분이 참석했습니다.
사실 조피와 콘스탄티노스의 결혼을 환영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먼저 그리스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프랑스측에서 독일의 영향력이 그리스에서 커질 것을 우려하게 됩니다. 또 독일에서도 이 결혼에 대...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0)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첫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10) 프로이센의 조피 : 콘스탄티노스 1세의 왕비(첫번째)
그리스에서 소피아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되는 프로이센의 조피는 독일의 황제 프리드리히 3세와 그의 아내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의 셋째딸로 태어났습니다.
조피의 아버지인 프리드리히 3세는 독일의 황제 빌헬름 1세와 그의 아내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의 아들이었습니다. 프리드리히3세의 부모는 성격적으로도 안 맞았고 정치적으로도 안 맞았는데 둘은 심지어 헤어지려고까지 했었지만 아들인 프리드리히의 만류로 그냥 헤어지지는 않았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프리드리히 3세는 자유주의를 더 선호했는데 아마도 어머니인 아우구스타의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버지인 빌헬름 1세는 보수주의자였고 이것은 프리드리히가 아버지 생전에 정치적인 활동을 크게 못하는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게다가 프리드리히 3세 역시 즉위전에 이미 암에 걸렸고 즉위한뒤 일년을 넘기지 못했기에 정치적으로 두드러지지 못했었습니다.
조피의 어머니인 프린세스 로열 빅토리아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과...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9)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두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9)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두번째)
러시아에서 마리아 게오르기예브나 대공비로 불린 마리아는 결혼후 큰 어려움 없이 지내게 됩니다. 마리아의 어머니는 러시아 여대공이었으며, 외가 친척들은 러시아에서 마리아를 잘 지낼수 있도록 도와줬습니다. 게다가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마리아의 사촌이었으며 또 마리아와 가장 친했던 크세니아는 게오르기 대공의 동생인 알렉산드르 대공과 결혼했었기까지 했었습니다. 마리아는 결혼후 두 딸인 니나와 크세니아를 낳았으며 게오르기 대공은 아내와 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게다가 러시아 대공들은 매우 부유했기에 마리아 역시 경제적으로도 부족함이 전혀없었습니다.
이렇게 러시아에서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마리아는 원치 않던 결혼을 했기에 남편에게 냉랭하게 대했으며 러시아에 머무는 것도 그렇게 좋아하지 않으며 화려한 상트페레트부르크의 궁정 생활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에게 늘 충실했던 게오르기 대공은 마리아를 위해서 크림반도쪽에 아내를 위한 집을 마련해주고 평온한 생활을 할...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8)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첫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8)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첫번째)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리아 공주는 그리스의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아내인 올가 왕비의 둘째딸이자 다섯 번째 아이로 태어났습니다. 마리아는 그리스의 미니라는 애칭으로 가족들에게 불렸는데, 아마도 고모이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3세의 황후였던 마리야 표도로브나의 애칭이 미니였기에 고모와 구별하기 위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위로는 오빠 셋과 언니 한명이 있었고 밑으로는 남동생 둘이 더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오빠인 니콜라오스와 언니인 알렉산드라와 함께 자라났으며 셋은 친한 사이가 됩니다. 또한 마리아는 자주 덴마크의 가족모임에 참석했고 어머니를 따라 러시아로 자주 갔었기에 이 때문에 많은 친척들을 만났습니다. 마리아는 이때 만난 고종사촌이었던 영국의 빅토리아 알렉산드라 공주(에드워드 7세의 둘째딸)이나 러시아의 크세니아 여대공(알렉산드르 3세의 첫째딸)와 평생 가까운 사이로 남았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언니인 알렉산드라보다는 덜 아름답지만 더 명랑하고 쾌할한 성...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7)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7)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 게오르기오스 1세의 딸
그리스와 덴마크의 알렉산드라 공주는 그리스의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와 그의 아내인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의 첫째딸이자 셋째아이로 태어났습니다. 알렉산드라라는 이름은 아마 고모이자 대모로 영국의 에드워드 7세와 결혼한 덴마크의 알렉산드라와 외할머니인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의 이름을 딴 것 일듯합니다. 그래서 원래 알렉산드라의 애칭은 “알릭스”가 되어야했지만, 이미 고모인 웨일스 공비의 애칭이 알릭스였기에, 알렉산드라는 가족들에게 그리스의 알릭스라는 애칭으로도 알려지게 됩니다.
알렉산드라의 아버지인 게오르기오스 1세는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아들이긴했지만, 어린시절에는 국왕이나 왕위계승자의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크리스티안 9세는 젊은 시절 덴마크의 왕위계승자가 되기전 덴마크 방계 왕가 출신의 군인으로 살았으며 부유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크리스티안 9세의 자녀들은 주로 고용인들과 생활하던 다른 왕가의 자녀들과 달리 부모와 함께 지냈으며 형제자매들과 함께 놀았었...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6)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세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6)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세번째)
1913년 3월 18일 막 점령한 텟살로니키에서 평소와 같이 경호원 없이 산책중이던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가 암살당합니다. 50년 넘게 함께 산 남편의 죽음은 올가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올가는 남편의 죽음으로 공적인 의무에서 모두 은퇴한뒤 개인적 삶을 살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게오르기오스 1세는 즉위 60주년 기념식을 마친후 퇴위하고 개인적인 삶을 살려고 했었습니다. 아마 올가도 남편과 함께 남은 여생을 평온하게 보낼 생각을 했을 것이지만, 남편의 죽음으로 이제 홀로 남은 여생을 보내야했습니다. 하지만 올가 삶의 비극은 이것이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습니다.
올가는 남편이 죽고 아들과 며느리가 왕과 왕비가 된 뒤에는 이제 더이상 그리스에 남아서 왕비로 의무를 수행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올가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그리스를 떠나 지내기로 결정했으며 늘 사랑했던 고향 러시아로 갑니다. 러시아에서 올가는 남동생인 콘스탄틴 콘스탄티노비치 대공이 물려받은 어린 ...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5)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1세의 왕비(두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5)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1세의 왕비(두번째)
올가는 16살이었던 1867년 그리스의 국왕 게오르기오스 1세와 결혼하게 됩니다. 사실 이 결혼은 정치적 목적이 강했습니다.
그리스의 게오르기오스 1세는 원래 덴마크의 크리스티안 9세의 아들로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빌헬름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덴마크 국왕의 아들은 아니었지만 덴마크 왕가의 분가 출신으로 결국 덴마크 왕국의 계승자가 됩니다. 하지만 게오르기오스 1세가 국왕이 된 데는 그의 아버지가 덴마크의 왕위계승자라서가 아니라 그의 누나인 알렉산드라가 영국의 왕위계승자인 웨일스 공의 부인으로 언젠가 당대 최강국인 영국의 왕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올가가 게오르기오스 1세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국왕으로 선출된 뒤 러시아를 방문한 1863년이었습니다. 이때 올가는 겨우 12살이었기에 혼담이 오갈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게오르기오스 1세는 신붓감을 찾아야했고 1867년 신붓감을 찾기 위해서 러시아 궁정으로 다시 오게 됩니다....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4)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 (첫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4)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 게오르기오스 1세의 왕비 (첫번째)
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은 러시아의 니콜라이 1세의 손녀로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과 그의 아내인 알렉산드라 이오시포브나 대공비의 장녀로 태어났습니다.
러시아의 황실인 로마노프 가문은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가 1613년 17살의 나이로 러시아의 차르로 선출되면서 러시아를 통치한 가문이었습니다. 특히 18세기 미하일 표도로비치의 손자였던 표트르 대제가 러시아를 개혁했고 주변의 스웨덴과의 투쟁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러시아가 유럽의 강자가 될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표트르 대제는 후계자를 결정하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이후 러시아는 후계자 문제로 혼란해지게 됩니다. 특히 표트르 3세 이후 로마노프 가문의 남성 직계가 단절되면서 정치적으로 좀 더 복잡한 상황이 됩니다.
표트르 대제의 딸인 옐리자베타 표트로브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조카가 모두 러시아의 황제가 되었지만, 사촌인 안나 여제가 즉위 한뒤 정치에서 밀려났었습니다. 옐리자베타는 안나 여제가 죽은뒤 ...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3) 올덴부르크의 아말리 : 오톤의 왕비(두번째)
그리스 왕가의 여성들...(3) 올덴부르크의 아말리 : 오톤의 왕비(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