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류상희
2024/09/04
내 이름은 이상희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세 글자로 이루어졌다. 첫 글자는 성, 다음 두 글자는 이름이다. 이름 두 글자 중 하나는 항렬(돌림자)을 나타내고 나머지 한 글자가 나 개인에게만 주어진 이름이다. 이것이 내가 태어나고 자란 시대의 주류 문화였다. 하지만 딸에게는 항렬을 붙이지 않고 족보에도 올리지 않았던 경우도 있었다. 딸이 결혼하면 사위의 이름을 족보에 올렸다. 여자는 독립적인 인간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있어야 남편을 통해 비로소 사람 대접을 받았다. 20세기 후반까지 남아있는 조선시대 문화는 이뿐만이 아니겠지만. 딸인 나에게 아들처럼 항렬을 따르는 이름을 주고 족보에도 올렸던 아버지를 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있던 진보적인 사람으로 생각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사실은 내 착각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아들이기를 바랐고, 그 염원이 컸던 만큼, 그만큼 나를 볼 때마다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에 실망도 컸을 뿐이었다.
성씨를 바꾸는 일은 유교 문화에서 큰 잘못이었다. “내가 다시 술 마시면 성을 갈지!” 성을 내놓고 하는 다짐은 목숨을 내놓고 하는 다짐처럼 비장했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정책인 창씨개명을 하느니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구미에서는 결혼하면 아내가 남편 성을 따라 성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근본 없는 야만인이라고 선생님은 혀를 찼다. 결혼해도 성을 바꾸지 않는 한국의 전통 문화는 그만큼 가문을 중시하고 여자의 성이라고 함부로 대하지 않는, 여자를 존중하는 훌륭한 문화라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았다.
일단 시집을 가면 죽어도 그 집의 귀신이 되라는 저주(?), 죽으면 남편의 남자 가족과 같은 장지에 묻히는 존재는 존중받음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집온 여자는 그 집의 가족이 되었겠지만, 다른 가족들과 같은 성씨를 쓰지 않는 가족 아닌 가족이었다. 명절 때마다 성씨가 다른 사람들이 부엌에서 나오지 못하고 며칠 동안 음식을 해대면서 이씨 사람들이 먹고 마시는 일에 뒷바라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리운 엄...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선생님. 동서양 모두 성씨가 직업이나 가문과 연관이 있다보니 생긴 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성씨에 대한 개념도 진화해야지 싶습니다.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선생님. 동서양 모두 성씨가 직업이나 가문과 연관이 있다보니 생긴 폐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성씨에 대한 개념도 진화해야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