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여, 기억하라. 5월 18일 광주를.
2023/05/18
광주에 내려간 건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아따, 너 말 이상하게 한다잉.” 광주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나는 표준어를 쓰는 이방인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나는 광주 사람이 됐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보고 듣게 됐다. 중학교 1학년 시절, 같은 학원에 속한 전문대 매점에서 먹는 350원짜리 육개장 컵라면과 150원짜리 자판기 음료수는 별미였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5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친구들과 함께 매점에 들어섰다. 그리고 벽을 봤다. 그날은 5월 18일이었다.
그것은 모두 얼굴이었으리라. 폭력에 짓밟혀 박살 나 얼굴이라 추측할 수밖에 없는 원형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엄지손가락을 안에 넣고 둥글게 주먹 쥔 크기의 사진이었는데 그런 사진들이 중학생 키보다 높고, 열 걸음쯤 옮겨야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벽면 상하좌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체온과 감정이 새어 나가고 짓뭉개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부서진 얼굴들. “아, 글쎄, 사람을 장갑차로 밀어버렸당께!” 어느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와 내 귓바퀴를 뱅그르르 돌아 나가던 언성이 불현듯 가슴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그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좀처럼 흩어지지 못하는 연기처럼 매캐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노인의 원망에는 굴뚝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노인의 삶도 매웠을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광주에서 살았던 내가 느낀 광주는 굴뚝 없는 원망들이 매캐한 연기처럼 남아버린 도시였다. 그 이후로 내게도 아궁이가 생겼다. 그리고 5월 18일쯤 되면 매운 기분을 느꼈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했단 말인가.
그것은 모두 얼굴이었으리라. 폭력에 짓밟혀 박살 나 얼굴이라 추측할 수밖에 없는 원형들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엄지손가락을 안에 넣고 둥글게 주먹 쥔 크기의 사진이었는데 그런 사진들이 중학생 키보다 높고, 열 걸음쯤 옮겨야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벽면 상하좌우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체온과 감정이 새어 나가고 짓뭉개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부서진 얼굴들. “아, 글쎄, 사람을 장갑차로 밀어버렸당께!” 어느 노인의 입에서 튀어나와 내 귓바퀴를 뱅그르르 돌아 나가던 언성이 불현듯 가슴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렸다.
나는 그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언어가 좀처럼 흩어지지 못하는 연기처럼 매캐하다고 느꼈다. 지금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노인의 원망에는 굴뚝이 없었다. 그래서 아마 노인의 삶도 매웠을 것이다. 유년 시절부터 학창 시절까지 광주에서 살았던 내가 느낀 광주는 굴뚝 없는 원망들이 매캐한 연기처럼 남아버린 도시였다. 그 이후로 내게도 아궁이가 생겼다. 그리고 5월 18일쯤 되면 매운 기분을 느꼈다. 정말 이런 일이 가능했단 말인가.
집필, 방송, 강연, 모더레이팅 등, 글과 말과 지식과 관점을 팔고 있습니다. 13인의 감독 인터뷰집 <어제의 영화. 오늘의 감독. 내일의 대화.>를 썼습니다. | mingun@nate.com / @kharisman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