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나일본부를 믿는 역사학자가 있다고? - 우리가 당황한 한국사
2024/01/03
<전라도 천년사> 발간을 놓고 유사역사가들은 우리나라 역사학자가 임나일본부설을 따른다고 열을 낸다. 그런데 그런 증거를 가져와보라고 하면 딴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가져올 게 없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우리나라 역사학자는 없다. 간단하게 그 점을 살펴보자.
유사역사학계가 본격적으로 역사학자들을 공격했을 때는 이병도가 <한국고대사연구>(1976)를 내놓았을 때였다.
유사역사학계가 본격적으로 역사학자들을 공격했을 때는 이병도가 <한국고대사연구>(1976)를 내놓았을 때였다.
마침 이때 유사역사학단체 국사찾기협의회가 결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유사역사가들 식으로 이병도의 책을 한번 보면 어떻게 될까?
(일본)서기 본문이나 그 분주의 일서에 보이는 연대는 조금도 믿을 수 없다. (p.348)
저들의 논리대로라면 이병도는 일본서기를 가짜라고 하고 있다. 그럼 임나일본부에 대해선 뭐라 해놓았을까? 옛날 글이라 읽기 쉽지 않지만(국한문 혼용체에 가깝다. 원문은 실제로 한자로 되어있기도 하고...).
일본사상에는 임나와 가라를 혼동한 예가 많을 뿐더러, 임나의 위치에 대해서도 매우 애매하여 소위 '임나부'(후일 왜관과 같은 것)의 소재이동에 따라 혹은 본가라(김해), 또는 안라(함안)를 단칭하여 임나라 하고, 또 위와 같이 가라 등 십소국을 총칭하여 임나라고도 하였다. 소위 '임나부'라 하는 것도 본시 왜국이 가라제국(諸國)과의 무역관계(가라제국의 금철·미곡·견직물 기타를 수요하는 교역관계)를 위하여 마치 근조선의 왜관과 같은 류의 상관(商館)을 설치하였던 것인데, 후에 가라제국이 신라의 압력에 못 이기어, 왜인의 무력원조를 구하게 때문에 소위 임나부가 다소 그 역할의 중심이 되었던 것 같다. (p.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