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1/20
참사 직후에는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논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고, 누군가의 책임을 묻기 전에 한마음으로 애도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예상하기 어려운 사고라 나중에 책임을 묻는 일에도 한계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20일 정도 지난 지금, 참사의 슬픔은 수사 소식과 정치적 논란 속에 묻혀져 가는 듯 합니다. 여러 개인들의 혐의들이 보도되고,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 명단 공개가 핵심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는 목소리들도 들립니다.
저는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 명단 공개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족들의 조직화된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입장을 미리 단정해 판단할 일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
궁금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대해 배우고자 노력하고, 깨달아지는 것이 있으면 공유하고 공감을 구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홈은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국회의원들 개개인으로 보면 진정성을 가진 좋은 정치인들이 여럿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권자들 역시 목소리가 크고 선명한 메세지를 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반응을 하다 보니, 그런 이들의 노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질문하고 국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정치인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민주당 자체적으로라도 그런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를 해야겠지만요.
세월호 때 민주당의 일처리가 빨랐던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슷한 참사에 이런 식으로 배려 없고 수준 낮은 대응을 하진 않았겠죠.
세월호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었기 때문에 내부 연락망을 통해 그들은 정치권의 도움 없이 쉽게 연대할 수 있었을 거예요. 민주당은 이미 다 된 연대를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지금 보이는 민주당의 모습이 진짜 수준이 아닐까. 전 그렇게 생각해서 굉장히 우울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유족의 다양한 의사를 반영할 창구 마련도 하지 않고 명단 공개로 찌르고, 슬픔을 드러낸다고 찌르고, 숨는다고 찌르는 식은 어떤 식으로는 유족에게 상처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정치권의 인본주의가 허상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유족들이 자유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자리 한 번 만들어 슬픔을 나누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슬픕니다.
얼마 전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다시 봤어요. 사회의 모든 문제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명준의 선택을 떠올립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명준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진 않아요. 사람들이 기댈 곳을 만들어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홈은님 댓글 감사드립니다.
국회의원들 개개인으로 보면 진정성을 가진 좋은 정치인들이 여럿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유권자들 역시 목소리가 크고 선명한 메세지를 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반응을 하다 보니, 그런 이들의 노력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국정감사 등을 통해 국회의원들이 질문하고 국가의 책임을 따지는 일은 정치인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민주당 자체적으로라도 그런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를 해야겠지만요.
세월호 때 민주당의 일처리가 빨랐던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비슷한 참사에 이런 식으로 배려 없고 수준 낮은 대응을 하진 않았겠죠.
세월호 희생자들의 대부분이 단원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었기 때문에 내부 연락망을 통해 그들은 정치권의 도움 없이 쉽게 연대할 수 있었을 거예요. 민주당은 이미 다 된 연대를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어쩌면 지금 보이는 민주당의 모습이 진짜 수준이 아닐까. 전 그렇게 생각해서 굉장히 우울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유족의 다양한 의사를 반영할 창구 마련도 하지 않고 명단 공개로 찌르고, 슬픔을 드러낸다고 찌르고, 숨는다고 찌르는 식은 어떤 식으로는 유족에게 상처로 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랑이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정치권의 인본주의가 허상에 가깝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봅니다. 유족들이 자유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자리 한 번 만들어 슬픔을 나누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는 것이 이렇게까지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 슬픕니다.
얼마 전 최인훈 작가의 광장을 다시 봤어요. 사회의 모든 문제에서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마다 명준의 선택을 떠올립니다. 이쪽도 저쪽도 아니라고 명준과 같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살고 싶진 않아요. 사람들이 기댈 곳을 만들어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