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희생자 명단 공개는 ‘참사의 정치화’가 아닙니다.

천관율
천관율 인증된 계정 · alookso 에디터
2022/11/18
1.
신생 언론 한 곳이 이태원 희생자 명단을, 유가족 동의 절차 없이 공개했다. 이태원 참사 3주 차에는 이 이슈가 참사 관련 보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얼룩소는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10월 29일부터 매일, 주요 언론이 쓴 이태원 참사 관련 보도 전체를 수집해 분석하고 있다. 분석 대상 언론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TV조선, 채널A(이상은 보수매체로 분류했다), 한국일보, KBS, SBS, JTBC(이상은 중도매체로 분류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MBC(이상은 진보매체로 분류했다) 총 12개사다.
지난달 31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 방문해 조문하는 모습. 출처: 연합뉴스

2.
시작은 해프닝에 가까웠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문제가 기사 제목에 처음으로 등장한 건 참사 열흘째인 11월 7일이다. 이날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문자메시지를 읽는 사진이 찍혔는데, 내용이 이랬다.

“참사 희생자의 전체 명단과 사진이 공개되는 것은 기본입니다... 유가족과 접촉을 하든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전체 희생자 명단, 사진, 프로필을 확보해서 당 차원의 발표와 함께 추모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메시지 발신자는 이재명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민주연구원 이연희 부원장이다.

민주당은 일단 브레이크를 잡았다. 메시지를 받은 문진석 의원은 “상상도 못 할 일이라고 답장했다”라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에서 말했다. 오영환 원내대변인은 “부적절한 의견으로서 그런 의견을 당내에서 논의할 상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상황은 곧 급격히 반전된다. 11월 9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이재명 대표가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 어떤 참사에서 이름도 얼굴도 없는 곳에 온 국민이 분향을 하고 애도를 합니까? 당연히 유족들이 반대하지 않는 한, 이름과 영정을 당연히 공개하고 진지한 애도가 있어야 됩니다.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명단 공개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첫출발이 이재명 대표 측근의 문자메시지였고, 이후 박찬대 최고위원 등 이재명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도 비슷한 의견을 낸 바 있다. 문자 메시지 보도 이틀만인 9일, 이재명 대표가 명단 공개 문제를 중요하게 보고 있다는 인식을 밝혔다. 이 문제가 이슈화된 계기는 이재명 대표 팀의 드라이브였다.

이태원 참사 보도 중, 제목에 ‘명단’이 들어간 기사 숫자는 11월 7일에 3건, 8일 16건, 9일 4건, 10일 5건, 11일 11건이다. 이후 이틀간은 제목에 ‘명단’이 들어가는 기사가 없다.

3.
11월 14일, 신생언론 민들레가 이태원 희생자 명단이라며 실명을 공개한다. 이 날 기사량이 37건으로 급증했다. 다음날인 15일에는 하루 87건이 쏟아진다. 이태원 참사에 대한 15일자 보도 네 건 중 한 건이 명단 공개 문제였다. 참사 이후 내내 정국의 핵심을 벗어난 적이 없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하루 최대 기사 건수는 69건이었다. 단기적 이슈 집중도만 보면 명단 공개 문제가 이상민 장관 문제보다도 높다.

민들레는 유가족 동의를 얻는 절차를 건너뛰었다. 이게 결정적인 문제가 됐다. 진보적 지식인, 인권단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정의당 등 넓게 보아 ‘민주당 우호 그룹’으로 인식되던 곳에서 비판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14일과 15일에 쏟아진 보도는 사실상 어떤 논란도 다루고 있지 않다. 보수언론은 전면적으로 때렸고, 진보언론은 주저하며 때렸다. 14~15일 이틀 동안 보도량을 보면, 진보언론은 18건(매체당 평균 6건), 중도언론은 32건(매체당 평균 8건), 보수언론은 72건(매체당 평균 14건)이었다.

명단 공개 문제를 정치의제로 띄운 사람은 이재명 대표다. 이 역풍도 고스란히 민주당과 이 대표가 맞고 있다. 민주당은 공식 논평으로 “명단 공개가 부적절하다”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 차원의 사과(이원욱 의원)나 비공식 코멘트(안호영 수석대변인)가 고작이다. 이렇게 해서 명단 공개 사건은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가 ‘참사를 정치화’하려다 쓴 맛을 본 사건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렇지 않다. 이 사건의 본질은 ‘참사의 정치화’라고 볼 수 없다. 왜 그런가?
천관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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