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결산 : 결혼이라는 시한 폭탄을 받아들이며

김상현
김상현 · 평범한 글쟁이
2023/01/26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나는 본가에 왔다. '왔다' 앞에 특별히 '머나 먼 여정을 통해'와 같은 수식어를 붙이지 않는 이유는, 성남시 안에 내 원룸과 본가가 같이 있기 때문이다. 대중교통을 타면 30분이다. 차가 안 막힌다면 20분. 택시를 타면 10분도 충분하다. 더욱이 나는 매월 최소 1주 주말은 본가에 가는 것으로 일상을 소비하기 때문에 명절이라고 본가에 간다는 느낌이 그렇게 특별하지는 않다.

그러나 명절에 전국민이 겪는 특수 이벤트는 매번 겪어도 특별하다. 어른들로부터 각종 덕담을 듣는 일은 내면의 감정을 복잡하게 만든다. 어떤 이들은 어른들의 여러 조언이 전혀 쓸모없다고 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는 아닌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조언을 수용하지 않는다. 전혀 수용하지 않고 오히려 피하는 조언이나 덕담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결혼과 관련된 이야기다.

어른들의 덕담에 웃지 못하는 이유

나는 대학, 취업의 능선을 넘어 어찌저찌 이 자리까지 왔다. 이제 일반적인 한국인이라면 나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혼'과 '자식'이다. 문제는 내가 그 산을 넘어가고 싶지 않다는 데 있다. 정확하게는 거의 '그럴 수 없다'에 가깝다. 왜 그런가? 일전에 여러 글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동성애자인데 한국에서 이들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지위을 얻기 어려우며 생물학적인 자식도 얻을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내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혼인신고를 통해 사회적으로 내 결혼을 인정 받을 수도 없고, 내 유전자를 가진 자식도 볼 수 없다.
-일본 동성커플의 행복한 결혼식은 웃음으로 가득하다 (허프포스트, 2017.02.20) -
이 말은 우리 어머니의 소원인 '나도 손주를 보고 싶다'를 내가 이루어 드릴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상대가 무언가를 강렬히 원할 때, 특히 그 상대가 가족일 때, 무언가를 이루어주고 싶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결혼까지는 어떻게든 되더라도 자식은 안 된다. 나라는 인간은 이 분야에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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