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수집가의 논리, 민족의 대변인
2024/01/21
‘내가 발굴한 보배’, 나의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 고도(古刀)를 소유하려는 욕망이 국가의 ‘써큐리티(security)’, ‘공공윤리’, 그리고 ‘자본’의 논리로 위협받자, 위기에 봉착한 수집가는 ‘민족의 대변인’을 자처한다.
「그 물건의 값어치를 알지 못한다면 이 땅에 태어난 걸 수치로 알아야 합니다. 그건 오랜 영혼의 소립니다. 천년 뒤에까지 남아서 옛자랑을 말하려 하는 것이지요.」(은은한 빛, 213)
돈으로 환산하고 일자리까지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하고 고도(古刀)를 품에 끼고 있는 욱(郁)은 그의 아버지의 눈에 이해할 수 없는 ‘미친 놈’일 뿐이다. 골동품을 화폐로 환산할 수 있는 자본으로 대하는 것은 욱(郁)에게 있어 ‘수치’스럽고 ‘영혼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상스러운’ 행위이다. 고도(古刀)를 소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욱(郁)의 욕망은 저급한 욕망인 자본의 유혹을 물리치는 동시에, ‘민족’의 수호 욕망으로 은밀히 감싸져 은폐된다.
정자를 나와 오솔길에 다다르면 정면에 펼쳐지는 시가는 끝없이 이어지고, 그 속에 우굴거리는 몇십 만 창생의 삶은 내 손아귀 속에 쥐어져 있다는 엉뚱한 환각이 솟아올라 호담한 심정이 되는 것이었다. 온몸의 힘을 다하여 고도를 뽑아 치켜들어 보았다. 도신(刀身)은 간신히 어깨죽지를 지나서 하늘로 흔들흔들 올라갔는가 하자, 무게로 해서 제물에 솔솔 흘러 내려왔다. 내려오는 힘을 이용하여 길섶에 풀을 탁 베어 넘기곤 다시 치켜들고 그렇게 어린아이 장난이나 다름 없는 짓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면서 흥에 겨워 있는 욱이었다.(…)「이걸 내놓을 판이라면, 차라리 내 목숨을 넘겨주고 말지. 밭이구 계집이구 어디 문제가 되느냐.」녹슨 벽록(碧綠)의 고색은 혼연히 어스름 속에 녹아들고, 금빛 칼자루가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났다. 정녕 욱은 머리가 돌았는지도 모를 일이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