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지상주의와 규정지옥 사이에서

김재연
김재연 인증된 계정 · 사회과학자, 데이터 과학자
2024/01/20
기승전 업그레이드

2023년 11월 17일, 일명 'IT강국' 한국의 국가행정망에 연속적으로 전산 장애가 발생해 민원대란이 야기됐다. 공무원 전용 행정전산망인 '세올' 행정 시스템의 마비는 시작이었다. 이어 온라인 민원 서비스인 '정부24', 주민등록시스템, 조달시스템, 전자증명서 발급 시스템, 조달청에서 운영하는 '나라장터'마저 일시 마비됐다. 전산장애로 민원서류 발급이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모두 중단되어 한 동안 전입신고마저 어려웠다.

정확한 원인에 대한 분석은 여전히 애매한 가운데 어쨌든 한국 정부의 결론은 업그레이드로 가고 있다. 작년 12월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국 국가행정망의 부품은 노후하고, 소프트웨어는 영세하며, 외부 침입에 취약하니 관련 재정 투자를 위해 국회가 예산을 빨리 책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문제의 맥락은 다르나 어쨌든 결론은 업그레이드(기승전 업그레이드)인 것은 최근 한반도의 큰 위험 요소가 된 홍수도 마찬가지다. 2022, 2023년 두 해 연속으로 한반도에 수해가 발생했다. 2022년 폭우는 대부분 중부 지방에 한정됐으나, 2023년 폭우는 전국을 강타해 피해가 더 컸다.

이때도 여론이 수해 방지 대책을 요구하자 정부는 업그레이드를 해결책으로 꺼냈다. 인공지능을 통해 홍수를 예보하겠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최첨단 기술이니, 최첨단 정책인 것이다. 최첨단 정책이 더 좋은 정책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 정의 없이는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어렵다. 국가행정망 마비이든, 수해이든 공공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종합적 원인 분석이 선행되어야 한다. 사람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가장 최신 도구를 쓰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리는 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무턱대고 쓰는 첨단 기술은 무용하고 유해하다

2013년에서 2015년 동안 미국 중서부의 미시간 주 정부는 34,000명의 미시간 주민들에게 실업 수당을 부당하게 수령했음을 통지했다. 미시간 의회는 이들이 가져간 돈이 3천 만 달러, 한화로 약 400억에 달한다고 언론에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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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스홉킨스 SNF 아고라 연구소 연구과학자. 미국의 대표적 시빅 테크 단체인 코드 포 아메리카(Code for America)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했다. <우리에게는 다른 데이터가 필요하다 (세종서적 2023)>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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