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적이고 적극적인 자유

이완
이완 인증된 계정 · 위기를 앞두고 혼자되지 않는 나라
2023/12/14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쌓아둔 책이 천 권이다. 사정은 이렇다. 우선 신간 중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장바구니에 넣는다. 그 중에서 돈이 되는 만큼 구매하고 훗날을 기약한다. 다음 월급날이 올 때까지 신간이 출간된다. 월급날이 오면 돈이 되는 만큼 책을 사고 또 다음 기회를 노린다. 이걸 수 년 동안 반복했더니 장바구니가 터지기 직전이다. 교보문고가 데이터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내 탓도 아주 조금 있지 않을까.

그래도 나는 떳떳하다. 지금까지 월급의 태반을 교보문고에 들이부었다. 절정은 월 200만 원 씩 번 2022년이었다. 그 해 분 연말정산을 하려고 자료를 정리했는데, '도서공연등' 칸에 천만 원이 찍혀 있었다. 굳이 밖에 나가서 공연을 본 적은 없으니, 전부 책값이었다. 다른 서점은 중고서적을 구매할 때에만 이용했으니, 거의 다 교보문고에 쓴 돈이었다. 이 정도면 데이터 지분을 불필요하게 차지해도 용서받을 만하지 않은가.

애초에 사고 싶은 책이 줄지 않으니 장바구니가 무거워질 수 밖에 없다. 출판시장이 위태롭다고 들었는데, 제목으로 나를 유혹하는 책이 끝없이 출간되고 있다. 그걸 다 샀다가는 통장이 부담을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이런 현실을 되새길 때마다 갑갑하다. 통장 잔고가 비면, 나는 중요한 일을 방해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상황에서 나한테 책을 살 자유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정부가 금지한 적은 없으니까, 통장이 비었어도 책을 살 자유는 남아 있는 걸까?

이렇게 질문하는 순간, 정치철학의 세계에서 백 년 넘게 끝나지 않은 '자유' 쟁탈전에 뛰어들게 된다.

선택지가 열려 있어야 자유롭다

온몸에 문신을 새긴 사람도 공무원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할까. 한 쪽에서는 고객이 무서워하거나 불쾌해 할 수 있으니 안 된다고 할 것이고, 다른 쪽에서는 각자의 몸은 각자의 것이니 된다고 할 것이다. 이렇게 기존 사회통념과 새로운 문화가 충돌할 때면 꼭 '개인의 자유' 한 마디로 논쟁을 끝내려는 사람들이 있다. 문신이 타인에게 직접 피해를 주는 행위도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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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를 연구하는 자유주의적 사회주의자입니다. 분별 없는 개인화와 각자도생 정신에 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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