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과 블랙리스트, 윤석열 정권의 시대정신

하성태
하성태 인증된 계정 · 자유로운 pro 글쟁이
2023/06/27
재작년이었나. 몇몇 영화계 지인들로부터 왜 블랙리스트 피해 신고를 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곤 했다. 실제 고통 받은 피해자들을 놔두고 딱히 신고까지 할 일이었나 의구심이 들긴 했다. 맞다. 수년 전 개인적으로 연루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을 떠올리면 개운치가 않고 씁쓸한 감정이 가시질 않는다.
 
블랙리스트 실행자로 지목받고, 비위 혐의로 해임을 당하고 고발당한 영화진흥위원회 전 사무국장이 되레 고소를 당했었다. 자신의 이름이 언급된 내 몇몇 칼럼이 본인의 명예를 훼손당했다는 이유였다. 봉준호 감독과 일부 영화인단체 대표 등이 고소당한 바로 그 사건이었다.
 
뜬금없이, 마포 경찰서에 가서 2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았다. 박근혜 블랙리스트와 관련된 몇 개 칼럼에서 단순히 이름 언급했을 뿐이었다. 너무나도 황당한 상황 앞에서 헛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칼럼 주제가 고소인도 아니었을뿐더러 딱히 개인의 명예를 훼손할 만한 내용도 아니었다. 사건 담당 형사조차 딱히 혐의를 의심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조사에 열심히도 아니었다.
 
황당하고 짜증나는 순간들로 기억한다. 그 당시 모든 상황이 그랬다. 기사 자체도 혐의와 거리가 멀었다. 무엇보다 블랙리스트 부역자로 낙인찍힌 이가 봉 감독님을 비롯해 블랙리스트 반대에 나선 영화인들을 고소하는 것도 모자라 관련 기사를 작성한 몇몇 기자들을 특정해 엮은 것도 적반하장이 따로 없었던 탓이다. 반년인가 1년 쯤 흘렀을까. 당연하게도, 무혐의 처분이 났다.
 
벌써 6년여가 지났다. 함께 고소당한 영화계 선배들과 웃으며 후일담을 나눌 정도로 시간이 흘렀다. 그럼에도 불쾌한 감정만은 또렷하다. 어찌보면 큰 피해를 입었다기보다 광범위하게 파생된 블랙리스트의 실상을 일정정도 당사자로서 경험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반면 실제 더 크고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은 씻기 어려운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그 검열과 블랙리스트란 유령이 다시금 한국사회를 배회하고 있다. 수많은 블랙리스트 피해자들의 비분강개가 들려오는 듯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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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으로 주세요. 전 FLIM2.0, 무비스트, 오마이뉴스, korean Cinema Today 기자, 영화 <재꽃> 시나리오,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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