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조선시대 가장 완벽한 정통성 가진 임금
조선시대 가장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왕을 꼽으라면 누구일까? 그리고 가장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왕은 누구일까? 답하지 않고 두 질문을 연이어 한 건 모두 한 임금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단종’.
조선 왕실의 왕권 암투사는 창업자 태조 이성계의 아들 대(정종과 태종)를 지나면서 안정기에 접어드는가 했었다. 물론 세종의 즉위가 맏아들인 양녕대군의 폐세자 결과물이었던 점에서 물 흐르는 듯한 것은 아니었지만.
세종의 다음을 잇는 문종의 즉위는 ‘맏아들 계승 원칙’이라는 유교 질서를 따랐다는 점에서 흠잡을 데 없었다. 굳이 억지로 옥의 티 하나를 ‘찾는다’면 아버지 세종이 세자가 아닐 때 태어났다는 것. 이를테면 ‘원손’은 아니었다. 글쎄, 이걸 티라고 해야 할까 싶다.
하지만 문종의 단명이 몰고 온 후폭풍은 ‘안정’이란 글자 앞 괄호 속에 ‘불’ 자를 넣어 잠재적 비극을 복선으로 숨겨야 한다. 이게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질문은 이 글의 맨 마지막에 다음 글을 예고하는 차원에서 해야 하는 게 맞다. 이번 글은 단종이 어떻게 즉위했는가가 초점이기 때문이다.
단종은 문종과 현덕왕후 권씨 사이의 맏아들로 1441년에 태어났다. 태어날 때 아버지는 세자였다. 그런데 어머니 현덕왕후는 아들을 낳은 지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없는 세자의 맏아들 운명은 어떻게 될까?
우리가 여기서 우선 살펴봐야 할 게 있다. 단종의 아버지 문종의 왕비와 후궁들에 관한 얘기다. 문종이 특히 건강이 안 좋은 데다가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었다는 식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다. 묘호 ‘문’ 자가 주는 의미와 재위 2년 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건강 또한 나빴을 것이란 선입관이 작용한 탓이 크다. 문종은 현덕왕후 물론이거니와, 여러 후궁을 두었고, 모두 3남 5녀의 자녀를 두었다.
다만 아내 복은 지지리도 없었던 것 같다. 일곱 살 때 세자가 된 문종은 열다섯 살에 휘빈 김씨와 첫 가례를 올렸다. 그런데 세자는 첫 아내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B급 역사랄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