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196편 - 2022년 러시아 푸틴 대통령, 적대국들에 가스 공급 대금을 루블로 전환시키려는 의도에 대한 생각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5/27
2022년 3월 23일 푸틴 대통령은 정부 회의에서 적대국들에 대한 천연가스 공급 대금 지급 방법을 루블로 전환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었다. 푸틴 대통령은 일주일 내에 달러와 유로화 대신 루블 결제로 바꾸기 위한 체계를 만들라고 중앙은행에 지시했다. 푸틴 대통령은 EU나 미국에 러시아 상품을 선적하고 달러나 유로를 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이전까지 유럽에 수출한 가스 대금으로 주로 유로를 받았었다.
사진 : 블라디미르 푸틴(Владимир Путин), 사진출처 : 미하일라 클리멘테바(Михаила Климентьева) / ТАС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작전을 개시한 뒤 EU와 미국 등 각국은 러시아 경제제재를 발표했고, 그로 인해 루블화의 가치는 터키 리라화 수준으로 폭락했다. 우크라이나에 군사작전 개시하기 전 루블화의 가치는 달러당 75루블 수준이었는데 3월 초 한때 110루블 이상으로 사상 최저치로 가치가 떨어졌다. 최근에는 100루블 수준으로 조금 회복되었다. 러시아는 경제제재에 반발해 경제제재에 동참한 나라들인 EU 회원국과 미국, 영국, 한국, 일본 등을 비우호국으로 지정하고, 비우호국에 대해서는 러시아 정부와 기업이 졌던 채무를 달러가 아닌 루블로 상환할 수 있게 하는 조치를 취했었다. 

따라서 러시아 외환 보유액 중 서방 은행에 맡긴 자금 상당액은 제재 여파로 동결된 상태인데다 이 때문에 러시아 디폴트 우려가 제기되었었지만 지금은 한 고비 넘긴 상태에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루블화로 가스를 결제하라는 조치는 에너지 전쟁에 불을 붙인 것이나 다름없다. 유럽 등 비우호 국가들을 대상으로 천연가스 매각 대금을 유로나 달러가 아닌 자국 루블화로만 받겠다는 선언은 거의 휴지조각이 되어 루블화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된다. 

한편 그에 대한 조치에 러시아산 천연가스 의존 비중이 높은 독일은 계약 위반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입장에 있다. 사실 이와 같은 부분은 제재를 강화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러시아의 입장에서 내놓은 자구책인데 유럽이나 미국이라 러시아에 했던 행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가스를 판매국인 러시아가 자기 마음대로 결제 수단을 선택하겠다는데 미국이나 유럽이 이와 같은 러시아의 행위를 과연 예상하지 못하고 제재를 가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나 원유 공급 대금을 달러화나 유로화로 받는 것이 어려워지게 만든 것은 미국과 서방이다. 그래서 러시아 입장에서는 제재에 대한 대응책을 내놓은 셈이다. 로베르트 하베크 독일 부총리 겸 경제기후부 장관은 루블화로만 결제하라는 요구는 계약 위반이라고 했으며 유럽 협력국들과 대응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독일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 천연가스 수요량의 55%를 러시아에서 수입했다. 

리투아니아 국유 가스 기업인 이그니티스도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인 가스프롬으로부터 가스 구매를 중단하고 루블화 결제도 하지 않겠다며 반발했다. 오스트리아 화학회사 OMV의 알프레드 스턴은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하기를 천연가스 비용을 지속적으로 유로를 내며 결제하겠다고 말했다.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푸틴 대통령의 발표 이후 공급 차질 우려로 급등하게 되었다. 유럽 시장의 천연가스 가격을 대표하는 네덜란드 TTF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이날 MWh당 117.00유로로 18.49% 올랐다. 그로 인해 루블화의 가치는 예상대로 상승했다. 

달러 대비 루블화의 가치는 이날 8% 넘게 올라 96루블대에 진입했다. 제이슨 투비는 월스트리트저널(WSJ)에 이번 조치가 폭락한 자국 통화 가치를 복원하고 러시아의 서구 금융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반면 투비는 푸틴 대통령 결정이 오히려 역풍을 맞게 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WSJ는 루블화 의무화가 러시아의 에너지에 대한 국제 사회의 수요를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러시아 정부는 천연가스 뿐 아니라 원유 수출 대금도 루블화로 받을려 하고 있다. 국제 유가도 러시아의 루블화 결제에 대한 충격으로 5% 넘게 올랐다. 이날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거래된 브렌트유 5월물은 전 거래일보다 5.3% 뛴 배럴당 121.60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날 미국 뉴욕 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5월물은 5.2% 상승한 114.93달러에 마감했다.

러시아의 이와 같이 루블화 결제로 선회하자 유럽의 여러 국가들은 러시아 못지 않은 가스와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으로 방향을 바꾸려 시도하고 있다. 남한보다 더 작은 아제르바이잔 본국이 가진 석유와 가스만으로도 유럽에 수십여년을 수출해도 크게 문제 없다는 분석이 있는데다 카스피해를 통해 역시 가스 부국으로 알려진 투르크메니스탄과도 연결하려는 계획이 있다. 

그와 같은 가스관 연결의 시작이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조지아의 트빌리시, 터키의 제이한을 연결하는 BTC 파이프라인을 말함인데 이와 같이 터키까지 도착한 아제르바이잔의 석유와 가스를 터키에서 시작해 유럽 이탈리아까지 연결하는 것이 나부코 가스 파이프라인으로 점철된다. 여러 주변 나라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없던 일로 되었지만 2019년에 트랜스 아나톨리아 천연가스 파이프라인(TANAP)이 개통 공사에 들어가면서 이와 같은 고심을 해결할 수 있는 한 가닥의 희망이 생겼다. 

나부코 라인이 아제르바이잔-조지아-터키- 불가리아-알바니아-이탈리아까지 연결되는 기획이었는데 불가리아가 빠지고 그리스가 들어간 게 트랜스 아나톨리아 라인이라 볼 수 있다. 총연장 3,500㎞에 달하는 남방가스통로(SGC)로써 이어지는데 러시아로써는 이에 대해 크게 반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은 맞다. 다만 여기에 대해서는 선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있다. 2020년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이 아르메니아를 응원하여 나고르노 카라바흐에 대한 아제르바이잔의 영유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게다가 아제르바이잔은 무슬림들이 대부분인 국가이고 터키와 중앙아시아 일대와 연결되어 있는 지정학적 요충지이다. 터키와 중앙아시아의 범투르크주의를 어느 정도까지 미국과 유럽이 용인해줄 수 있을 것인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나고르노 카라바흐에 대한 영유권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의 과제가 남아있다. 더불어 투르크메니스탄이 친서방, 유럽으로 과연 넘어올 수 있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면 투르크메니스탄은 굳이 유럽이나 미국과 교역 없이도 러시아와 이란의 사이에서 무역을 하며 이미 먹고 사는데는 큰 지장이 없기 때문이며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독재와 국내 인권 탄압에 대해서 어느 정도 용인해줄 수 있을 것인지도 미지수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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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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