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레트로-잃어버린 것들을 위하여 ①>

얼룩커
2023/10/07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스피커 하나가 나와 있었다. A4 용지 반 장 크기로, 작고 허접하고 생채기가 많았다. 때 묻은 은색이 싸구려 티가 심했다. 시집간 지 10년째인 내 딸 중학생일 때 사준 I사의 국산 오디오 스피커보다 훨씬 못했다. 그냥 지나칠 일인데, 스피커 앞면 브랜드를 보고 멈췄다. ‘알텍-랜싱(Altec-Lansing).’ 내 한창일 때 ‘로망’이었던 ‘알텍’이었다. 40여 년 전, 세운상가 오디오 전문점에서 두어 번 들어보고 침만 삼켰던, 메이드 인 유 에스 에이, 그렇게 갖고 싶었던 ‘명품’ 스피커 브랜드였다.쭈그려 앉아 살펴보았다. (주워올 생각은 절대 아니었음.) 메이드 인 차이나였다. 볼수록 조잡했다. 컴퓨터 살 때 따라오는 장난감 같은 스피커보다도 못했다. “알텍도 망해서 중국으로 넘어갔구나” 생각하면서 일어났다.몇 걸음 움직이는데, 예전에 탐만 냈지 가질 수는 없었던 오디오 기기들이 눈앞을 흘러 지나갔다. 그러다가 마침내 갖게 된 내 ‘기계’와 내 ‘나팔’, 이 기계와 나팔로 즐겼던 음반-LP와 CD-들도 지나갔다. 그것들을 생각하니 사람들도 여럿 떠올랐다. 기억 속에 숨어 있던 이야기들이 분리수거장에 버려진 알텍 스피커를 따라 흘러나왔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의식의 흐름, ..., 자동연상(自動聯想)에 시동이 걸렸다. 움베르토 에코의 표현을 빌리면, “뇌의 주름 속에 갇혀 있던” 오래된 추억들이 슬금슬금 풀려 나왔다. 오래된 것에는 많은 이야기가 숨어 있다. 짧은 이야기를 여러 편 쓸 수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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